서촌에 만든 작은 파리


Ofr. 서울 대표 박지수, 1990년생

파리의 서점이자 갤러리, 출판사를 겸하는 복합문화공간 ‘Ofr.’을 서울에 상륙시킨 ‘Ofr. 서울’ 대표이자, 셀렉트 숍 ‘미라벨’의 대표.



파리의 복합문화공간 ‘Ofr.’의 서울 지점을 서촌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원래 ‘Ofr. 파리’ 단골이었다고요?

맞아요. 여느 서점과는 다르게 절판된 고서적도 많고, 희귀한 예술 책이 많이 있어 자주 방문했어요. 그때 산 시슬레 화집이 아직도 집에 있어요. 책 말고 굿즈나 의류도 판매하니까 친구들 선물로 보내주곤 했는데, 주변에서 서로 사다달라고 부탁해 거의 공동 구매처럼 됐었죠.


왜 파리가 그렇게 좋았나요?

파리를 여행하다 한 옷 가게에 들어갔어요. 마감이 임박한 시간도 아니었는데 직원들이 가게 문 닫을 준비를 해야 하니 나가달라고 하더라고요. 소비자보다 근로자의 권리가 우선시되는, 한국에선 보기 드문 문화였죠. 나중에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파리에선 마감 시간 20~30분 전에 마감 준비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마감 시간까지 쇼핑할 수 있다는 게 권리라고 여겼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거죠. 나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는 문화가 이상할 만큼 좋았어요. 그때부터 파리의 매력에 푹 빠졌죠. 사실 대학 때 전공은 영어통번역학이었는데 프랑스가 너무 좋아 교환학생을 신청해 무작정 파리로 간 거예요. 1년 동안 파리에 있으면서 대학원을 들어가든, 일을 하러 오든 나중에 무조건 프랑스로 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사하고 파리로 갔다면서요?

삼성물산에서 3년 반 정도 일했는데 패션 대기업에 다녔던 것도 나중에 프랑스에서 패션 기반 사업을 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단계였죠. 회사 다닐 땐 하기 싫었던 매출 보고나 자료 분석, 재고 파악 등의 반복 업무가 지금 제 사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인턴부터 신입사원 때까지 ‘비이커’ 국내 파트 MD로 일했어요. 비이커 라벨로 나오는 자체 제작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렉토’와 ‘디스이즈네버댓’ 등의 브랜드를 입점시키기도 했죠. 그리고 파리로 나갈 준비가 어느 정도 됐을 때 퇴사해 바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발급을 준비했죠. 대사관에 면접 보러 갔을 때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점과 교환학생으로 체류했을 당시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어필했어요. 교환학생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다시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틈틈이 프랑스어 공부를 했거든요. 그렇게 프랑스로 가서 한 달 정도는 쉬면서 자리를 잡고 바로 셀렉트 숍 ‘미라벨’을 론칭했습니다.


한국은 변화도 유행도 굉장히 빠른 나라잖아요. 10년 전에 제가 좋아했던 서울의 공간들을 떠올려보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Ofr. 서울은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한결같이 찾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요.


프랑스로 떠날 때 수중에 있던 돈은 얼마였나요?

일단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집에 고스란히 두고 왔어요. 1년 후 망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재취업하면서 생활비로 쓸 목적이었죠. 대신 회사 다니면서 3년 동안 부은 연금저축을 해지한 돈 600만원을 가지고 갔어요. 프랑스에 가서 두세 달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니까 무조건 그 안에 취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수익을 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죠.


한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파리의 잡화를 판매하는 셀렉트 숍 미라벨은 처음부터 잘됐나요?

미라벨은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모두 담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입니다. 주얼리, 헤어 액세서리, 신발, 가방, 테이블웨어, 커트러리 등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상품들로 가득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너무 다양한 품목을 파는 게 오히려 브랜딩에 해가 될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게 된 것이 저희 매장만의 차별점이 된 것 같아 만족합니다. 초기에는 블로그 마켓 형태였고, 파리에서 바잉한 빈티지 제품을 팔거나 구매 대행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중 한 품목이 Ofr. 제품이었고요. 원래는 용돈벌이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마켓이 잘돼 본격적으로 꾸려나갔어요. 처음부터 잘돼 첫 달 순수익으로 딱 가져왔던 돈만큼 벌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Ofr. 대표와도 친해진 건가요?

네, 블로그 마켓을 하며 Ofr.에 자주 드나들었어요. 자연스레 대표인 알렉스와 친해졌는데, 그러면서 Ofr.이 한국 시장에서도 먹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Ofr. 파리에 자주 드나드는 한국인이 한둘 아니었을 텐데 왜 그들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저도 그 점이 항상 궁금해요.(웃음) 알렉스는 제가 아는 이들 중에 가장 편견이 없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성격은 ‘빠릿’한 편인데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고, 빨리 소비되는 문화는 지양하죠. 일회용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요.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성향은 저와 많이 비슷해요. 그래서 저를 알아본 게 아닐까 싶어요. 알렉스는 제 인생의 귀인이죠.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에게 엄청난 투자를 한 거고, 저는 그걸 매출로 갚고 있죠.


Ofr. 서울을 이곳 서촌에 오픈한 이유도 궁금해요.

워킹 홀리데이 비자 유효기간이 끝나갈 때쯤 서울 지점 오픈 제안을 받고 너무 유행을 타지 않는 지역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성수가 ‘핫플’ 궤도에 오르기 직전이었고 지척에 서울숲도 있어서 그곳에 1호점을 오픈했는데, 점점 성수가 너무 핫해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건물마다 공사를 하고, 매장이 매일매일 바뀌고. 그래서 정말 변함이 없는, 파리 같은 동네가 서울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어요. 마침 매장이 너무 좁아 이사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대학생 때 자주 다니던 카페가 그대로 있고, 변함없이 좋은 동네가 이곳 서촌이었죠. 임대료가 합리적이기도 했고요. 대출은 안 받았지만 워킹 홀리데이에서 벌어온 돈을 이곳에 ‘몰빵’했습니다.(웃음) Ofr.과 미라벨 쇼룸을 함께 운영해야 했기에 공간은 1, 2층이 분리된 복층 구조를 찾았어요. 그래서 1층에선 Ofr. 파리에서 발행한 책은 물론 각종 고서적과 예술서,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원서, Ofr.에서 제작한 의류와 잡화를, 2층에선 액세서리부터 리빙 제품, 각종 오브제까지 미라벨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Ofr. 서울이 잘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선 Ofr. 파리의 도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파리에서 출간된 서적과 상품들을 보내줘서 국내에서도 빠르게 만나볼 수 있었죠. 오픈 2년째가 되던 해에는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해외여행이 단절되었죠. 그 시기에도 서울에서 파리의 상품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 손해를 보더라도 파리

현지와 가격을 최대한 동일하게 맞춰가려고 노력합니다. 본인만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상품들을 좋은 가격에 소개해드리려는 것이 Ofr. 서울이 지향하는 가치예요.


지금은 Ofr. 서울이 잘돼 걱정 없겠지만 시작하기까지 부담감은 없었나요?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겁이 나긴 했어요. 근데 제가 생각을 깊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가능성을 면밀히 따지고 플랜을 A부터 C까지 세워두는 철저한 성향이 아니다 보니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실패해도 미라벨이 있으니까.(웃음) Ofr.을 서울에 론칭하고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해 미라벨을 더 열심히 운영하기도 했죠.


그렇게 대담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궁금해요.

사실 노하우라고 할 것도 없지만(웃음)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는 거예요.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빠르게 다른 길로 가는 것. ‘잘 안 되면 어떡하지’ 주저할 시간에 도전해보고, 만약 실패한다면 빠르게 접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면 되니까요. 물론 사업 자금은 미리미리 조금씩 모아둬야 하고요.


오늘 보니 직원들에게 굉장히 깍듯하게 대하던데요. 어떤 유형의 리더인가요?

저와 직원들은 가치관이나 성향이 비슷해요. 특히 도덕적인 관념이요. 예의라고 생각하는 부분과 결례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같아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직원들에게 선을 잘 지키는 리더가 되려고 해요. 직원들과 대표인 제가 같은 마음가짐인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열과 성을 다하는 직원은 저 하나로 족해요.(웃음) 그래서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는 직원은 원치 않아요. 저도 회사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아는 것 같아요. 너무 ‘열일’하면 번아웃이 금방 오거든요. 뭐든 기본에 충실한 게 좋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국에서 1990년대생 여성 창업가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창업할 당시는 29살이었죠. 벌써 6년 전이네요. 확실히 무시하는 시선이 많았어요. 어린 여자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에 편견도 있었고요. 부득이하게 용달 차량을 이용하거나 수리를 맡겨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업체에 일을 맡길 땐 항상 전후 사진을 다 촬영해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관련된 일로 공격이 들어왔을 때 받아칠 증거가 있어야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원래 꼼꼼한 성격이 못 되는데 철저해지게 되더라고요.


‘잘 안 되면 어떡하지’ 주저할 시간에 도전해보세요. 만약 실패를 겪는다면 빠르게 접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면 되니까요.


내 생활과 일 사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게 있다면요?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워낙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 그때그때 털어버리려고 노력해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작고 값비싼 디저트를 먹는 거예요.(웃음) ‘포시즌스 호텔’ 디저트나 ‘10 꼬르소 꼬모 카페’ 디저트 같은.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이렇게 작고 비싼 디저트를 먹고 싶을 때 먹고, 여행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삶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네요?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지금 제 목표와 할 수 있는 능력치에는 다다른 것 같아요. 여기까지가 딱 제가 최선을 다해 꾸려갈 수 있는 범위예요. 그래서 사업을 더 키우거나 매장을 늘릴 생각은 없고, 잘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고안하고 있습니다.


10년 뒤 Ofr. 서울과 자신의 모습을 전망해보자면요?

한국은 변화도 유행도 굉장히 빠른 나라잖아요. 그래서 10년 전에 제가 좋아했던 서울의 공간들을 떠올려보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더라고요. Ofr. 서울은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한결같이 찾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요. 그러려면 Ofr.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공간이 돼야겠죠.


10년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당신의 ‘최애’ 공간은 어딘가요?

서촌에 있는 ‘MK2’라는 카페예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서촌이라는 동네에 매력을 느끼고 Ofr.을 이곳으로 들여온 것도 있죠. 그리고 추억 속으로 사라진 공간 중에는 신사동에 있던 ‘블룸 앤 구떼’라는 플라워 카페요. 생화와 풀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어요.


롤모델로 생각하는 인물이 있나요?

‘포인트 오브 뷰’의 김재원 대표님이요. ‘LCDC 서울’의 브랜딩 총괄을 맡고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교수도 겸하셨죠.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매장을 둘러보면 올바른 ‘덕후’의 표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구점을 어떻게 그토록 멋있게 구현해낼 수 있는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인데, 위라라 대표님이요. 브랜드 의류 제작도 하고 해외 브랜드도 들여와 편집숍을 운영하시는데 업무적으로 배울 점이 많아요. 판단력도 좋으시고요. 일과 가정을 모두 잘 꾸려가는 그 모습을 정말 닮고 싶어요.



이제 막 창업을 하려는 20대 여성 리더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요?

작은 것이라도 무조건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게 있고, 작은 성공이라도 그게 모이면 큰 성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우선은 많이 경험해보길 권하고 싶어요.

 

Ofr. 서울을 운영하는 데 철학이 있다면요?

우선 제 성향 자체가 유행하는 스타일을 안 좋아해요. 요즘 해외 도시를 오마주한 공간이 유행을 타고 있잖아요. 저는 되레 ‘파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고 했어요. 사실 파리 감성을 콘셉추얼하게 내세워야 먹힌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지만요.(웃음) ‘파리’ 하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클리셰를 피하려고 했어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는 관광지 파리보다 파리지앵의 생활 공간인 파리를 녹여내려고 했죠.


자주 감탄하게 되는 공간이나 브랜드가 있나요?

‘포니테일’이라고, 유행을 좇지 않고 클래식한 무드의 의류를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예요.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자주 감탄하게 돼요. ‘아스티에 드 빌라트’도 정말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갈 때마다 디테일에 감탄하죠.

 

당신도 실패를 해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매번 실패를 경험하죠. 심혈을 기울여 바잉해왔는데 반응이 별로 안 좋을 때가 자주 있으니까요. 반면 가벼운 마음으로 들여왔는데 반응이 폭발적일 때도 있고요. 일을 하다 가장 회의를 느꼈을 때는 힘들게 들여온 상품을 너무 손쉽게 카피한 제품을 봤을 때? ‘남 좋은 일만 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그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너무 좋았으니까 베끼는 거겠지’ 하고요.


여러 한계를 딛고 여성 작가로서 활동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파리를 향한 ‘덕심’과 워킹 홀리데이에 가져갔던 600만원이요. 좋은 사업 아이템은 덕심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아이템이요. 이를테면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Ofr.의 업사이클링 의류나 파리지앵 감성의 에코 백이요. 그리고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만큼의 돈 정도는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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