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식 육아 바이블
빌리지베이비 대표 이정윤, 1991년생
MZ 육아 동지들을 위한 바이블, 커뮤니티 서비스와 이커머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올인원 애플리케이션 ‘베이비빌리’. 4개국에서 40만 유저를 확보한 이정윤 대표는 모든 엄마, 아빠들이 빌리지베이비로 더 나은 육아 라이프를 영위하길 꿈꾼다.
‘베이비빌리’ 이용자가 40만을 돌파했어요.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뒀나요?
다운로드 회원 수가 40만 명, 앱에 들어와서 시간을 쓰는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20만 명입니다. 찾아주시는 이유 중 하나는 아기 빌리의 귀여운 3D 캐릭터 때문인 것 같아요. 배 속의 아기를 귀엽게 시각화해 자라는 모습을 개월 수에 따라 보여주는데, 다마고치처럼 꼬물꼬물 자라는 모습이 캡처를 부르나 봐요.(웃음) MZ세대는 공유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저희는 ‘귀여우면 저장한다, 저장하면 자랑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잘 들어맞았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임신초기’를 검색해보면 베이비빌리 캡처가 많이 나와요. 광고비를 많이 쓰지 않은 오가닉 마케팅만으로 MAU 20만까지 온 데 자부심이 있답니다.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한다면서요?
맞아요. 한국에 임산부가 25만 명 있거든요. 임신 기간 52주로 나누면 일주일에 5000명 정도 있는 건데, 저희 앱을 임신 초기 기준으로 매달 4000명 이상씩 다운받으니, 80% 정도로 추산되죠. 남은 20%가 도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우리를 안 깔았지? 그게 고민입니다.(웃음)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날수록 애는 소중하니까요. 하나를 낳아 소중하게 기르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육아 시장이 계속해서 수요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죠.
만 27세에 창업했는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출산·육아 사업을 할 생각을 했어요?
법인 설립은 그때 했는데 팀이 제대로 꾸려진 건 2019년이고, 2020년에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어요. 마침 그때쯤 저도 임신해 유저로서 앱을 써보면서 출산했죠. 이 과정에서 더욱 확신을 가졌어요.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인데 얼마나 알고 싶은 게 많아요? 아이가 없던 시기에 육아 사업을 시작한 건, 이전부터 창업을 꿈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보통 첫사랑은 실패하니까 최대한 어릴 때 실패하자는 마음으로(웃음) 창업을 결심하고, 아이템을 찾다가 주변 언니들이 임신, 출산을 하는 걸 지켜봤어요. 그런데 언니들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거기서 아기의 시기별 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떠올렸죠. 바로 창업에 착수했고, 그 과정에서 다들 아기가 없는데 어떻게 이 사업을 할 거냐 해서, 저도 하나 낳았습니다. 남편의 협조를 얻어서.(웃음)
한국 출생률이 바닥을 치고 있잖아요. 비혼과 딩크 비율도 높아지고요. 뚝심 있는 선택인데, 어떤 인사이트로 접근했나요?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날수록 애는 소중하니까요. 하나를 낳아 소중하게 기르는 시대잖아요. 우리 부부도 번 돈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써요. 그래서 오히려 육아 시장이 계속해서 수요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어때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회사를 키우는 것도 되게 재미있어요. 물론 도움은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아빠라고 답할 만큼 남편이 애를 잘 봐줘요. 제가 저녁에 미팅할 때면 집에 가서 갈비탕을 끓여놓죠.(웃음) 입주 시터분께서도 많이 도와주세요. 육아를 외주화해야 여성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유튜브 채널 <EO>에서 김소영 아나운서와 나눈 말인데, 육아하는 여성 창업가들은 많이들 시터를 쓰시더라고요. 회사에 일이 터졌을 때 애를 들쳐 업고 달려올 순 없으니까요.
요즘 MZ세대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접근은 이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아요. 좋은 현상이고 당연한 일이에요. 동경하던 멋진 언니가 아이를 낳고 전업하면서 꿈을 접는 걸 보면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이젠 전통적인 모성, 희생하는 어머니상에서 벗어나야죠.
사회와 기업에서도 지원이 있어야 할 테죠. 빌리지베이비는 어때요?
저희는 육아를 병행하는 분들이 다니기 좋은 회사라고 자부해요.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다 재택에 유연근로제거든요. 출근한 날은 아이를 하원시키고 다시 와서 근무를 하기도 해요. 또한 육아용품 커머스를 하는 만큼 임직원 할인 혜택도 있습니다.(웃음)
아빠도 이 앱을 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은 아빠 가입자가 엄마들의 5분의 1밖에 안 돼서, 저희는 아직 배고파요. 저희 앱이 아빠들을 위해 최적화해둔 게 많거든요. 임신한 엄마를 위해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인 태담 서비스, 산모를 마사지하는 법, 아기를 목욕시키는 법 등 주차별로 정보를 주죠. 엄마가 아빠를 초대하면 “이제 내 육아 동지가 똑똑해져요”라고 문구가 뜨는데, 그 말 그대로 육아 동지잖아요? 아빠 가입자를 2배로 늘리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독박 육아가 아닌 함께 하는 육아 콘텐츠를 위해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요?
요즘 제 고민은, 모든 가정에 아빠가 있진 않을 거잖아요. 여성과 남성 부부가 주 양육자가 아닐 수도 있고요. 우리 앱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얼마나 잘 커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주 논의해요. 또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성평등한 단어를 쓰고 있느냐의 문제죠.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가 돼야 하듯이. ‘산후조리하는 법: 시댁 편’과 ‘친정 편’ 콘텐츠를 올린 적이 있는데, 유저들이 왜 시댁은 높이고 친정은 낮추냐고 의견을 주셨어요. 맞는 말이죠. 시댁과 친정댁이 되거나, 시집과 친정이 되거나, 시가와 처가가 돼야죠. 바로 의견을 반영해 고쳤어요. 친할머니, 외할머니 같은 용어도 구시대적이라 아빠 할머니, 엄마 할머니로 쓸까도 논의했는데,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저가 많을테니 섣불리 바꾸지는 못하고 있어요. 남성 임직원들과 다 함께 논의하는데, “나는 이런 거 너무 극단주의적이고 불편해”라고 말하는 분은 없습니다. 건강한 분위기예요.(웃음)
한국에 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에 진출했죠. 출생률 때문인가요?
맞아요. 한국은 매해 25만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태국은 70만 명, 베트남은 150만 명, 인도네시아는 330만 명이 태어나거든요. 한국 업체가 해외에 진출하면 대체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같은 콘텐츠를 서비스하는데, 저희는 반드시 현지 인력을 한 명씩 뽑아요. 나라별 맞춤형 콘텐츠로 각 나라에서 한 달에 1만 명 넘게 새로운 유저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앱을 다운받고 한 달간 유지하는 비율이 3%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아세요? 저희 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재접속률도 80%나 돼요.(웃음)
저도 앱을 깔아봤는데, 베이비빌리 동기 모임 ‘베동’ 커뮤니티가 활발하더라고요.
출시했을 때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방향적 앱이었어요. 유저가 10만 명 정도 됐을 때 커뮤니티를 오픈했고, 바로 지표가 우상향됐죠. 처음부터 빈 게시판을 뒀으면 잘 안 됐을 거예요. 커뮤니티라는 게 많은 사람이 와글거려야 자기도 써볼 마음이 들거든요. 물론 이미 포털 카페에 더 많은 회원 수가 형성돼 있는데 굳이 왜 저희 커뮤니티를 쓸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저희는 같은 달에 아기를 낳은 사람들끼리 동기로 묶어둔다는 데 강점이 있어요. 지금 가입했다면 2월에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모여 있는 ‘베동’에 들어가 있으실 거예요. 딱 그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거죠.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임신·출산·육아 콘텐츠 서비스로 시작해서 한 달 만에 빠르게 커머스로 전환했죠. 시장에서 흔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보통은 트래픽은 모았는데, 그들이 돈을 쓰게 유도하는 단계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이들 실패하거든요. 저희는 바로 버티컬 커머스를 도입했고 성공적이었어요. 후발 주자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베이비빌리도 했잖아요, 저희도 할 수 있어요”라고 얘기하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소비자들이 왜 다른 플랫폼이 아닌 베이비빌리에서 육아용품을 산다고 생각하나요?
임신·출산·육아 단계별로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최적화해 보여주기 때문이죠. 1개월 딸이 있는 엄마라면, 같은 개월 수 딸을 가진 다른 엄마들이 뭘 사는지 보여줘요. 데이터경쟁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죠. 임신 6개월 차에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데 배가 나온 상태에선 뭘 사야 하지?’ 하고 혼란스러울 때 임신부 안전벨트를 제시하고, 워킹맘에겐 ‘전자파 차단 담요를 사세요’ 같은 푸시를 보내니 구매로 이어지는 거예요. 저희는 네이버 최저가보다 500원이라도 싸게 소싱해 오기 때문에 여기서 정보를 얻고 다른 데서 구입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죠.
초창기 팀업은 어떻게 했어요?
제가 다니던 컨설팅 회사의 동갑내기 디자이너를 꼬셔서 데리고 나와서 함께 창업했어요. 굉장한 인재였죠. 인생의 복 세 번 중 한 번을 썼어요.(웃음) 그 친구가 데려온 마케팅 팀장, 그리고 지금의 CTO인 개발자까지 4인이 초기 멤버예요. 또래들이라 너무 즐거웠어요. “조회 수 제일 잘 나오는 걸 상단에 둘까?”라고 말하면 디자이너는 바로 쓱쓱 그리고, 개발자 친구가 뚝딱 만들어줬죠. 스타트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팀원들이 있었던 게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임직원 수는 총 40명이에요. 그런데 사무실이 휑하죠? 금요일엔 아무도 회사를 안 나와서 그래요.(웃음)
서울창업허브에 자리를 잡았네요. 창업자들에게 혜택이 큰가요?
저희가 제일 큰 방을 쓰는데, 40인 오피스인데도 연세가 700만원이에요. 굉장히 싸죠.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대상으로 심사를 통해 입주하는 시스템인데 저희 투자사인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추천해주셔서 들어오게 됐어요.
젊은 여성 창업자도 많나요?
동갑인 양띠 친구들이 많아 다 같이 라운지에 모여서 놀아요.(웃음) 업종도 다양한데 IT 서비스가 가장 많은 것 같네요. 커머스, 에듀테크, 헬스케어 등등 업종은 다르지만 채널은 대개 앱이에요. 원격으로 성병 검사를 할 수 있는 ‘체킷’, 과외 플랫폼 1위 기업 ‘설탭’, 중국어 교육 앱 ‘오색중국어’ 대표 등이 또래 여성들이에요. 서로 상담도 많이 하고 격려도 해주죠. 정말 든든한 존재들이에요.
원래 컨설팅 회사에서 기업 인수 타당성을 분석하는 일을 했죠.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창업에 도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기업을 인수하는 게 타당한지 타당하지 않은지 따지는 일을 했죠. 당시 저희 고객사가 ‘스타일난다’, ‘오렌즈’ 등 개인이 작게 시작해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이 많았는데요, 그런 기업의 대표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하는 등 시작이 얼마나 소소했는지 알게 되고, 심장이 뜨거워지곤 했어요. 저도 빨리 창업을 하고 싶었죠.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가 밝았을 것 같네요.
컨설팅 회사가 좋은 건 스물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마흔 살 넘는 대기업 부장님께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는 점이죠.(웃음) 물론 그러려면 산업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말도 잘해야 하고, 단정하게 입고 다녀야 해요. 그런 내·외적 트레이닝이 한 기업의 대표가 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창업 자금은 얼마였죠?
3000만원.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며 돈 쓸 틈 없이 바빠서 금방 모았어요.(웃음) 법인 설립하고 바로 1억 정부 지원금을 받았고, 요즘도 매년 3억씩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어요. 청년 사업가이면 좀 더 유리하니 가점을 잘 챙기세요. 법인 설립하기 전에 1억을 주는 예비 창업 패키지, 법인 설립하고 나서 주는 초기 창업 패키지, 2년 동안 7억을 지원하는 팁스 프로그램은 꼭 챙기시고요.
처음 수익이 발생해서 손에 쥔 돈은요?
2021년 1월에 거래액이 200만원이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2023년 1월에 이제 22억이니, 1000배 컸네요. 손익분기점은 지난해 1월에 넘겼는데, PB 사업에 새로 진출하면서 선입금을 넣고 해외 진출을 하면서 직원도 더 뽑아 아직 월별로는 적자예요. 하지만 저희도 투자자들도 지금은 돈 남길 때가 아니라 공격적으로 투자해 성장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흑자인 것보다 조금씩 까먹어도 세계적으로 규모를 키우는 게 더 건강하다고 봐요. 올해엔 월 거래액 100억이 목표인데,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것이냐 더 투자할 것이냐 고민이 이어지고 있죠.
여성들에겐 사회적으로 학습된 겸손함이 있어요. 그런데 겸손한 척을 하다 보면 진짜로 자신감이 없어지게 되거든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내가 내 물건 파는데 자신 없으면 못 팔잖아요.
한국에서 1990년대생 여성 창업가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1990년대생 여성 창업자가 많지는 않기에 젊은 여성 창업자에 대한 인식을 망치지 않기 위해 더 잘하려 노력해요. 물론 짜증 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을 받으면 멘토링을 하고 인증 사진을 남겨야 하는데, 어떤 대표님께서 저를 찍은 후 그 사진을 보면서 불쾌한 방식으로 제 외모를 평가하시더라고요. 아직도 세상엔 그런 아저씨들이 있습니다.(웃음)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To Do’와 ‘Not To Do’ 리스트를 준다면?
‘To Do’는 넘어갈 건 넘어가자. ‘Not To Do’는 넘어가지 못할 건 넘어가지 말자!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을 땐, 손을 들고 “죄송한데 저 그거엔 동의하지 않아요”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냥 넘기는 게 더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앞으로 10년 뒤 출산·육아 분야에서 산업 지형의 변화를 전망해본다면?
여전히 모든 사람의 관심 대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니까요. 창업자들은 사업 아이템에 대해 말할 때 많이들 “누군가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했다”고 표현하는데요, 이건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인류의 페인 포인트일 거예요. 10년 뒤에도 이 문제를 계속 풀고 있을 것 같네요.
당신에게 성공이란?
상장만이 목표인 기업의 대표는 좀 멋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세계 정복?(웃음) 아시아에서 우리 서비스를 사랑해줬으면 좋겠고, 나아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앱이 됐으면 해요.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공유해주고 싶은 노하우가 있나요?
여성들에겐 사회적으로 학습된 겸손함이 있어요. 그런데 겸손한 척을 하다 보면 진짜로 자신감이 없어지게 되거든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내가 내 물건 파는데 자신 없으면 못 팔잖아요. 분명 내가 자신을 가질 만한 근거가 있을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 ‘내가 5년간 컨설팅 회사 다니면서 본 회사가 몇 갠데 회사를 망치겠어?’, ‘우리가 똑똑하지 않았다면 유저를 40만 명이나 데려왔겠어?’ 같은 근거가 있겠죠. 근거를 찾아내서 자신감을 가져보세요. 저도 그렇게 해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