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세상은 있다


실비아헬스 대표 고명진, 1993년생

소수의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기 위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에서 서울대 의대로 전향한 고명진 대표는 에이지테크 스타트업 ‘실비아헬스’를 창업했다. 그에게 나이 듦이란 부정하고 막아야 할 것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실비아헬스는 어떤 기업인가요?

비대면 인지 건강 관리 플랫폼 ‘실비아’ 앱을 운영하고 있어요. 실비아는 사용자에게 ‘인지 건강 평가’를 제공해 치매가 의심될 때 늦지 않게 내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해요.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관리를 잘 받으면 30~40% 정도는 예방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중장년층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리면 마치 희망을 본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해요.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것 역시 실비아헬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죠. 현재는 B2B, B2G 위주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전국에 있는 치매안심센터나 보험사와 협업해 치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저희 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식이에요.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실비아헬스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요. 결국 모든 사람은 나이 들기 마련이고, 노화를 막기보단 나이 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죠.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던 중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소수일지라도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그 당시 저를 보살펴주셨던 조부모님께서 편찮으시기도 했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의료와 교육 분야의 봉사를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죠.


주변 사람들은 이런 행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제가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은 제가 안정된 길만 밟길 바라고, 저의 행보에 우려와 걱정이 많았지만, 제가 묵묵히 가고 싶은 방향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는 다들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죠.

 


창업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뭐예요?

의대생 친구들과 함께 실비아헬스라는 이름으로 독거노인의 정서적 지원을 돕는 봉사 프로젝트를 운영했어요. 병원에서, 봉사 현장에서 만났던 중장년과 노인분들이 치매를 두려워하시는 것을 보고 고령층의 의료 문제 중 이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에 AI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지테크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서울대학교와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가 공동 주관한 공모전 ‘미니 데모데이’에서 우승하면서 실비아헬스의 법인까지 설립하게 됐어요.


창업에 봉사 활동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나요?

처음 한국에 오자마자 카페·식당 알바,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마구잡이로 했어요. 스무 살 때는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복지관 앞에서 ‘선생님 급구’라는 문구를 봤어요. 일하느라 피로해진 저의 상태를 환기해볼 요량으로 한번 봉사를 시도해보기로 한 거죠. 사회복지사가 5학년 남학생의 수학 과외를 맡아달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는 말했어요. “가세요. 저는 ‘루저’고 저한테 수학은 사치예요”라고요.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에 수학보다는 그 친구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눴더니 점점 마음을 열더라고요. 3개월 뒤 그 학생은 90점 맞은 시험지를 저에게 가져왔고, 나중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해 선생님이 됐어요.

 

정말 큰 보람을 느꼈을 것 같아요.

네.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더라고요. 그때 제 삶에도 울림이 들어차면서, 아르바이트를 다 그만두고 봉사에 전념했어요. 이타적인 마음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 봉사했던 것 같아요. 삶의 의미를 느꼈거든요. 제가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사회 속에서 작지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기뻤어요. 디캠프에서 실비아헬스의 사업 계획서를 쓸 때는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어요. 훗날 기업을 영속하기 위해선 비즈니스 모델이 꼭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요.

 

실비아헬스의 창업 자본금은 얼마였나요?

100만원이었어요. 100만원으로도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답니다.(웃음) 다만 미니 데모데이에서 우승한 후, 감사하게도 시드 투자사를 30여 곳 만날 수 있었어요.

 

투자사의 피드백으로 배운 것도 있나요?

첫 번째는 에이지테크 시장이 굉장히 크다는 것, 두 번째는 그 시장에서 성공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배웠어요. 아직까지 에이지테크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없었거든요. 어떤 투자자분은 제게 어린이 사업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한국에는 효자, 효녀가 생각보다 별로 없다고요. 현실적인 충고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실비아헬스를 통해 지향하는 바는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했어요.



실비아헬스를 지금껏 운영해보니 투자자들의 우려와 다르던가요?

우리가 생각하던 노인과 지금 시대의 노인은 정말 달라요. 흔히 노인들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우려하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스스로 필요성을 자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알려드리면 스마트폰으로 실비아헬스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시더라고요.


자본금에 비하면 현재는 회사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고, 첫 매출은 얼마였나요?

지금껏 투자받은 금액이 최소 30억원 정도 되니 규모는 커졌다고 할 수 있죠. 첫 매출은 소프트웨어 판매로 번 1000만원이었고요.

 

대체로 사람들은 노화를 막으려고 하는 편인데요, 대표님은 노화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저는 안티에이징(antiaging)보다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해요.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실비아헬스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요. 결국 모든 사람은 나이 들기 마련이고, 노화를 막기보단 나이 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죠.


노화에 대한 섣부른 오해 중 하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봉사 활동을 하면서 독거노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느낀 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마음은 그대로라는 거예요. 나이 들면 모든 게 많이 바뀔 거라 예상하지만, 그분들께서는 자신의 생각, 마음, 욕구는 언제나 똑같다고 말씀하시죠.

 

실비아헬스 앱으로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죠.

네. 그 게임들은 인지 검사의 일종이에요. 게임을 통해 나이에 비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지 체크할 수 있어요. 만약 그 수치가 현저하게 낮다고 판단되면 인지 장애 정도를 자가로 체크해볼 수 있고 임상심리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매칭해드리고 있어요.


게임을 꾸준히 플레이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요?

인지 훈련만으로는 어려워요. 실비아헬스의 게임들은 핀란드에서 진행된 핑거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했어요. 이는 사회생활, 영양, 운동을 포함하는 생활 습관의 개선을 통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예요. 사실 치매는 질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한 상태거든요. 그렇기에 치매의 30~40%는 생활 습관 개선과 적절한 인지 자극을 통해 예방할 수 있어요.


실비아헬스의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은 어땠나요?

인지 능력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아졌는지 그 실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R&D 분야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죠.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치매 검사인 ‘신경심리검사’를 만든 연구소에서 함께 개발했어요. 현재는 실비아헬스팀 내에 전문 연구원이 상주하며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고요. 초반에는 5060세대가 주류인 커뮤니티에 가서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노인분들은 게임이 재미없어도 안 하시고 어려워도 안 하시더라고요. 심지어 너무 쉬워도 안 하시죠. 각 개인의 나이와 인지 정도, 취향에 따라 인공지능이 맞춤화된 게임을 제안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게임 조작 방법을 설명하는 UX 라이팅 측면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앞으로도 계속 향상시켜야 하는 분야예요. 가끔 중장년분들과 만났을 때 스마트폰에서 “~하실 시간이에요” 하며 알람이 오면 귀찮기보다 오히려 챙겨주는 것 같아 기특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문장 하나하나가 사소하지만 따뜻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봐요.


실비아헬스가 속한 산업이 10년 후에는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나요?

국내에서 중증 치매 환자는 요양 병원으로 입원시키는 게 수순이죠. 반면 일본의 한 마을에 갔을 때 치매 환자를 위한 스타벅스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그곳은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앞으로는 한국도 어르신을 요양 병원에 보내지 않고도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가 함께 그분들을 돌보며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길 바라요. 미국 호스피스 병동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죽음이란 자아실현 이후의 죽음이었고 일본 노인의 경우 고향에서 맞는 죽음이었어요. 반면 한국의 노인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죽음’이 이상적이라 답했다고 해요. 같은 연령의 노인인데도 사회 환경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달랐어요. 한국에서도 치매를 더 이상 다루기 어려운 질병으로만 보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에이지테크 분야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시행착오를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우려하는 것이 실제로 겪어보면 그리 위험한 요소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노인들의 능력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한 번도 노인이 돼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나다움’을 잃지 않는 거예요. 투자사나 외부인의 말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돼요. 시장과 제품, 고객에 대해 본인이 가장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이를 일관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다움’을 잃지 마세요. 투자사나 외부인의 말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돼요. 시장과 제품, 고객에 대해 본인이 가장 많은 고민을 해야하고 이를 일관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90년대 젊은 여성 창업자로서 편견에 부딪힌 적 있나요?

제가 의대에 다닐 때도 남자와 여자의 성비가 거의 8:2였어요. “요즘 수술방에 여자가 들어가고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말도 들은 적 있죠. 현재 시니어 시장에도 대다수의 남성이 50~60대라 젊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아요. 보험사 같은 시니어 시장에서 젊은 여성들은 소위 ‘살아남기 위해서’ 정장을 모두 갖춰 입고 다니는 분도 있죠. 어떤 분은 제게 비즈니스할 때 그렇게 편하게 입고 다니면 어떡하냐는 말을 하신 적 있는데, 저는 그냥 제 모습 그대로 다녀요. 이게 제 스타일이고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서울대 의대에 면접 갔을 때 그곳 카페에 어떤 직원분이 제게 했던 얘기가 내내 기억나요. 그 면접에서 어그 부츠를 신은 사람은 거의 저밖에 없었거든요. 수족 냉증이 있어서 신은 건데 그걸 보고 웃은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카페 직원 분은 “그걸 신었다고 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했어요. 그 이후 그 말이 제겐 영감이 돼서 사회적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입든 비즈니스가 결렬되지는 않을 거라는 좀 당당한 마인드를 갖게 됐어요.


어떤 모습의 리더를 지향하나요?

저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퍼포먼스가 가장 잘 나와요. 전공으로 경제학과 의학을 선택한 이유도 한정된 상황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행위를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회사를 운영할 때도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걸맞은 최적의 전략을 찾아야 하죠. 직원들에게도 최대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에요.


팀원을 선정할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나요?

전문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를 유심히 봐요. 이 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젠가 가족이 치매에 걸렸을 때 혹은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는 의지예요.


 

당신의 삶에서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일은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나의 시간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잖아요. 죽음이 있어 삶이 소중한 것처럼 일이 있기 때문에 쉼이 소중하죠. 저는 일을 하면서 나의 존재가 가치 있음을 느끼곤 해요. 저희 할아버지가 사업가이신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이기도 해요.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사람의 가치는 자신만이 정할 수 있다고 일러주셨어요. 어렸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실비아헬스를 창업한 지금은 공감하고 있어요.

 

요즘 눈여겨보는 MZ세대 인물이 있나요?

‘오픈AI’를 설립한 1985년생 샘 올프먼이요. 4년 전 그가 오픈AI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을 본 적 있어요. 그는 당시 막대한 연구비와 인건비로 경영난을 겪으면서도 “수입을 올리되 공익에 대한 공헌을 우선시하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변화할 것”이라 발표했어요.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영리와 비영리의 구조를 유지하는 그의 원칙에 영감을 받았고, 실제로 그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행해나가는 과정을 보며 큰 울림을 느꼈어요.

 

노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건강과 사회적 역할, 이 2가지가 삶의 원동력이 될 거라 생각해요. 제품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오픈AI처럼 수익을 올리되 공익에 대한 공헌 목적을 우선시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행복한 노후를 위한 조건이라고 봐요.

 

여러 한계를 딛고 여성 작가로서 활동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첫 번째는 용기요. 내가 나를 믿고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두 번째는 사람이요. 혼자 어렵게 고민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나누었을 때 훨씬 더 지혜롭게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지금의 제품과 성과로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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