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이상한


시눈 대표 신윤, 1991년생

얼마 전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2023년 스프링 컬렉션을 선보이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시눈’. 예쁘지만 이상한 옷을 모토로 MZ의 취향을 저격 중이다.



패션 브랜드 창업자들은 인플루언서인 본인을 앞세워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잖아요. 오늘 보니 대표님 역시 외모가 무척 매력적인데, 왜 전면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해요.

 패션업계에 본인의 매력과 재능을 전면에 드러내는 대표분들이 많은데, 그것도 사업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죠. 하지만 저는 아이콘 한 명으로 움직이는 회사보다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오너리스크를 키우고 싶지 않기때문에 저를 굳이 노출하지는 않는 편이죠.


MZ 소비자들은 예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아요. 완벽하게 세팅하고 빈틈없이 페인트칠이 돼 있는 건 금세 따분해하죠.

 

시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걸리시하고 로맨틱한 무드죠. 대표님의 취향인가요?

제가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던 스물다섯 때부터 이어진 저의 취향이에요. 그런데 마냥 걸리시한 무드에 머물 수는 없었어요. 작은 브랜드는 한두 시즌 잘 안 되면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주로 블라우스나 드레스를 만들다 다른 것에도 도전해야 할 시점이라는 걸 명확히 깨달았을 때 이지 캐주얼을 처음으로 선보였어요. 그런데 시눈의 방식으로 만들었죠. 바람막이에 프릴을 달고, 깅엄 체크를 쓰고, 강렬한 레드에 파스텔 톤 스카이블루를 매치하는 식으로요. 내부에서도 이런 걸 누가 입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강행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된 거예요. 깜짝 놀랐죠. 시눈은 너무 공주 같은 스타일이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저희 제품을 입기 시작했고, 해외 바이어들에게 줄줄이 연락이 왔죠. 팬데믹 시기에도 최고 매출을 찍을 수 있었어요.


과감한 변신이 브랜드를 키운 경우군요. 2023 봄 컬렉션을 현대백화점 판교 팝업 스토어에서 선보였죠. 이번 시즌의 키워드는 뭔가요?

아름답고 이상하게. 저는 저희 브랜드가 예쁘기만 할 때 가장 약한 것 같아요. 예쁘기만 하면 지루하고, 이상하기만 하면 대중성이 없죠. 그래서 그 비율이 중요해요. 사실 이건 시즌 상관없이 제가 늘 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턱을 잔뜩 넣은 새틴 원피스를 만들었는데, 여기까지만 했으면 섹시하고 러블리한 원피스였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두 겹으로 캐주얼한 나일론 와샤 원단을 넣었어요. 입을 때 새틴 자락을 훅 올려서 묶으면, 위에는 실키하고 밑에는 러프한 믹스매치 룩이 되는 거죠.


그건 요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이기도 한가요?

그럼요. MZ 소비자들은 예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아요. 완벽하게 세팅하고 빈틈없이 페인트칠이 돼 있는 건 금세 따분해하죠. 그래서 지금 저희가 있는 이 플래그십 스토어도 일부러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아트 페인팅을 하고, 타일도 마감 처리 없이 러프하게 붙였어요.


타깃층은 역시 MZ세대죠?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댓글을 쓰시는 참여형 고객들은 20대 초반이 많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시는 고객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 많아요. 타깃층이 넓습니다.


이렇게 넓은 타깃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저와 같이 시눈 의상을 거의 다 만들고 계신 디자이너 봉유리 실장님은 30대 중반이지만 시눈의 옷을 너무나 잘 소화하세요. 저희가 어릴 때 만났던 소비자분들이 아직도 저희 옷을 구매한다는 게 유의미한 지표 같아요.

 

옛날에는 나이대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듯이 옷을 입었지만, 요즘엔 30~40대도 자기 취향을 버리진 않으니까요. 사실 40대 초반도 밀레니얼 세대라 MZ죠.

맞아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취향껏 입을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타깃층도 넓게 잡았어요.



이곳 플래그십 스토어도 시눈다워요. 넓은 홀에 의상을 디스플레이한, 평범하게 효율적인 공간이 아니잖아요. 홀로 이어지는 회랑, 공간 속에 공간 등 섬세하고 비밀스럽죠. 온라인에서 많은 수익을 내도 오프라인 매장을 공들여 꾸미는 이유가 있나요?

정확하게 봐주셔서 기쁘네요.(웃음) 브랜드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매장 건물은 통으로 다 뚫려 있는 공간이었어요. 리모델링하면서 공간에 레이어를 주고 독특한 형태를 만들었죠. 입구도 여기가 카페인지 옷을 판매하는 매장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들었고요. 내부에서 동선이 복잡해 피로도가 높다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저는 적당히 헤매면서 구경하는 게 재미를 주고 시눈의 이상한 예쁨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위드 코로나 시기에 리모델링했는데,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오픈하게 돼 타이밍도 너무 좋았죠.

 

브랜드를 론칭할 때 레드 오션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한국 패션 산업에 디자이너 브랜드 전성시대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어떤 뚝심으로 밀고 나갔는지 궁금해요.

창업은 무대뽀여야 합니다. 그냥 해야 해요. 제가 창업을 고민하던 시기는 ‘에이랜드’라는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차세대 톱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디자이너들이 활약할 무렵이었어요. 그걸 보며 ‘나도 내 눈에 예쁜 거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불을 지폈죠. 그래서 저는 팀원들이 자기 브랜드를 내고 싶다고 하면 얼른 하라고 권해요. 나는 스물다섯에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면서요.


25세의 어린 나이에 어떻게 창업을 했나요?

그때 저는 서양화 전공 미대생이었는데 당시엔 남자 친구였고 지금은 남편인 오효범 공동대표가 작업실에 놀러 와서 드로잉을 보더니 “이걸 그리면 어디다 쓰냐”고 묻는 거예요. 그냥 지류함에 보관한다고 하니, “이거 옷에 넣자”고 제안해 그냥 실크스크린을 찍어봤어요. 그런데 10장 찍으면 10장이 팔리고, 100장 찍으면 100장이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블로그 마켓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제작에 뛰어들었어요. 의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처음엔 옷을 그려서 공장에 가져갔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맨땅에 헤딩하면서 작업 지시서 쓰는 법 배우고, 패턴실 가서 배우고, 유튜브로 배우다가 답답해 패션 디자인 대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학습과 경영을 병행하며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은 제가 비주얼과 디자인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오 대표는 회사 운영을 맡고 있어요.

 

블로그 마켓에서 어떻게 압구정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 브랜드로 클 수 있었나요?

초반엔 마니아층의 구매 화력이 가장 컸어요. 학생이 예쁘게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다는 신기함이나 소통의 재미도 있었겠죠. 만들어내는 족족 매진되곤 했어요. 시눈을 본격적으로 브랜드화한 건 2017년도였는데, 전문 디자이너 브랜드의 세계에 나오니 제가 착각 속에 살았다는 걸 번쩍 깨달았죠. 내가 경쟁해야 할 위치가 어딘지, 브랜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파악해나갔어요. 예쁘게만 만들던 초반에는 매출이 좋지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쁘고 이상하게’로 리브랜딩한 후 매출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죠.


룩북 이미지는 어떻게 비주얼 디렉팅을 하나요? 저는 시눈의 모델 중 무던하면서 묘한 매력이 있는 모델을 좋아해요.

카자흐스탄에서 온 친구예요.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이국적인 묘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저는 예쁘장한 친구가 팔짱 끼고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거나, 차분한 포즈를 취했는데 왈가닥인 게 얼굴에서 보이는 등, 모순적인 매력을 보여줄 때가 좋아요. 이런 미적 감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희는 숫자로 대화를 하는데요. “몇 퍼센트 예뻐?”, “몇 퍼센트 이상해?” 이런 식으로 밸런스를 맞추죠.



저는 아이콘 한 명으로 움직이는 회사보다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창업 자금은 얼마였나요?

500만원이요. 미술 과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시작했죠. 상표 등록하고, 카페24에서 도메인 구매하고, 나머지는 다 옷 만드는 데 썼어요.


창업 과정에서 맞닥뜨린 가장 큰 산은 뭐였어요?

부모님이 제가 창업하는 걸 크게 반대하셨어요. 옷장사를 한다니까 뜯어말리셨죠. 지금은 굳이 시눈 플래그십 스토어 도산 앞에서 친구분들과 약속을 잡고 지나가면서 우리 딸이 하는 곳이라고 자랑하세요.(웃음)


처음 손에 쥔 수익금은요?

없었어요.(웃음)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10장을 팔아도 100장 팔아도 남질 않았죠. 원가, 유지비, 관리비 등등을 핸들링하면서 마진 남기는 법을 몰랐거든요. 브랜드에 반응이 오는데도 1년간 수익을 내지 못해 전문 컨설턴트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마진을 남기고 회사를 경영하는 법을 배웠죠. 현재 5년 전 기준으로 영업이익이 1300% 정도 성장했네요. 하지만 지금 저희는 이익을 내기보단 투자를 더 해야 하는 시기라, 목 좋은 시눈 플래그십 스토어 도산도 과감하게 마련했어요.


어떤 리더인가요?

우리 직원들이 볼 테니 잘 대답해야겠는데요. (웃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깐깐하게 한 번 더 확인하는 대표. 어쩌면 피곤할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그래도 행복할 때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거든요. 성과가 생기면 인센티브를 꼭 나누려 하고, 고맙다는 감정 표현도 적극적으로 해요.


한국에서 젊은 여성 창업가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시눈 초창기에는 공동대표인 남편 오 대표와 함께 미팅에 나가거나 거래처에 가면 당연히 제가 부하 직원이라고 생각해, 제게는 아예 명함을 주지도 않더라고요. 언젠가는 한 바이어가 저희에게 파리에 가져갈 한국 브랜드를 찾는다고 말해 룩북을 상세히 보여드렸는데, 제가 직접 입은 걸 보고 싶다고 해 그 자리에서 옷을 몇 벌 피팅하며 열심히 어필한 적이 있어요. 돌아오는 길에 내가 남자 대표였다면 굳이 이런 요청을 했을까 싶어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속상하더라고요. 이 사건 이후로는 모델이 아닌 제게 옷을 입어보라는 요청은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어지는 고충은, 여자 디자이너들과는 이야기 안 할 테니 남자 데려오라는 제조 공장 사장님이 많다는 거예요.


여자가 많은 패션 산업계에서 아직도 그런 일이 있다니 놀라운데요.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나요?

안 되겠다 싶어 제가 쫓아가서 타이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거래를 끊기도 했어요. “공장이 여기만 있냐, 다른 데 가서 하자”고. 한국에 패션 제조 공장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직원들을 지켜야죠. 창업하면서 아직도 일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앞으로 10년 후의 패션 산업 동향과 그 속에서의 내 모습을 예측해본다면요?

옷을 가공하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될 거예요. 지금 입사하는 20대 초반 친구들은 클로라는 프로그램으로 패턴을 입히고 치수를 입력해 3D로 작업해요. 사람의 신체는 비슷하고 그 안에서 약간의 변화로 디자인이 바뀌기 때문에, 지금도 로봇이 디자인을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고 있을 거고요.

 

인스타그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피드는 어떻게 꾸미나요?

중요하죠. ‘좋아요’의 노예입니다.(웃음) 비주얼팀과 MD팀이 3주치의 피드를 미리 준비해요. 원칙은 예쁜 거 옆에 이상한 것. 완성도 높은 사진의 나열은 지루해요. 그냥 툭 찍은 휴대폰 사진이나 스캔받아서 일부러 저화질로 만든 사진 같은 걸 섞어놔요. 공들여 가공한 룩북 사진이 아닌 휴대폰으로 찍은 날것의 사진이 더 좋은 반응을 받는답니다. 요즘엔 ‘좋아요’ 외에도 ‘저장하기’ 기능이 있어 얼마나 저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사진들이 저장도 더 많이 되죠. 내 휴대폰으로 찍은 듯한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그게 실사에 가까울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룩북 촬영할 때도 좋은 카메라 외에 휴대폰으로도 찍어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가지는?

디자인할 때 쓰는 아이패드용 드로잉 앱 ‘프로크리에이트’, 필름 사진 무드의 보정 앱 ‘VSCO’ 그리고 ‘인스타그램’.


롤모델로 생각하는 인물이 있나요?

데이비드 호크니를 꼽고 싶네요. 제가 서양화과에서 공부하던 시절엔 너무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라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꿀렁꿀렁 그린 이상한 낙서 같은 그림들도 참 멋져 보이더라고요.(웃음) 사업을 하면서 생긴 상업적인 감각이 그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이해하게 했나 봐요.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저 자신을 감쌌던 작고 투명한 큐브요. 브랜드에 집중할 때 저는 작은 큐브 속에 있는 것처럼 2년 동안 친한 친구도 만나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오로지 브랜드에만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메타 인지 능력이에요. 저는 스스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잘 알아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잘할 수 있었죠.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To Do’와 ‘Not To Do’ 리스트를 공유해준다면?

‘To Do’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해보기. 이를테면 제가 오늘 중요한 사람과 미팅이 있어요. 그럼 그분을 만날 때 뭘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약속 장소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첫 마디는 어떻게 던져야 할지까지 상상해보는 거예요. 심지어 저는 그분의 인터뷰 영상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사무실 구조까지 인지한 뒤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런 방법으로 저는 어떤 만남과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브랜드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여러분도 가능한 구체적으로 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Not To Do’는 나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팀원들 복지를 신경 쓰면 결국 성과로 돌아오니, 인색하게 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클로즈업 | CLOSE UP

사업자 등록번호 104-81-55280 | 대표 강주연

통신판매업 신고 번호 2014-서울강남-00333

허스트중앙(유)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56

E-mail jobcloseup@gmail.com


Copyright ⓒ 2022 Hearst Joongang. All Rights Reserved.

클로즈업 | CLOSE UP

사업자 등록번호 104-81-55280 | 대표 강주연

통신판매업 신고 번호 2014-서울강남-00333

허스트중앙(유)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56

E-mail jobcloseup@gmail.com


Copyright ⓒ 2022 Hearst Joonga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