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편지 가게


글월 대표 문주희, 1991년생

편지와 관련된 제품과 모르는 이와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 서비스를 제안하는 편지 가게, ‘글월’의 문주희 대표는 편지지와 필기구, 향수 등의 제품을 통해 이 시대 편지가 갖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2023년에 존재하는 편지 가게라니, 낭만적이에요. 처음부터 편지 가게를 꿈꿨나요?

창업을 하기 전 매거진의 에디터로 일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획해 기사로 만드는 일이 좋았는데, 인터뷰 기사를 특히 좋아했어요. 평소에는 만나지 못할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정리해 제 인사이트까지 담아 완성하는 제작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인터뷰 기사는 한 사람의 특정한 순간을 정리해주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꼭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주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그게 글월의 러프한 아이디어였어요. 근데 그때만 해도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의 역할은 편지가 사라지지 않고, 편지 쓰는 문화가 계속될 수 있도록 거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어떤 생각이었나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가기 전 비는 시간 동안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그동안 사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 바로 창업을 해야겠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대신 만나고 싶은 인터뷰이의 숫자는 정했어요. 100명. 100명이라는 숫자를 채우긴 어렵겠지만, 다 하고 나면 제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웃음)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해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보자. 만약 100명을 인터뷰했는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때 다시 회사에서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죠. 그렇게 저만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인터뷰이는 어떻게 찾았나요?

제 친구들부터 시작했어요. 주로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외부 공간이기도 하고 소음도 있다 보니 생각보다 몰입도가 떨어지더라고요.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최소 비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게 지금 글월의 본점이 됐네요.


공간을 꾸릴 자금은 얼마나, 어떻게 준비했나요?

딱 가게의 보증금을 메울 수 있는 금액으로 시작했어요. 월세도 어떻게든 낼 수 있을 것 같은 금전적 부담이 적은 곳으로 찾았죠. 예산에 맞춰 동네를 찾으니 망원동, 을지로, 명동, 연희동으로 좁혀졌어요. 어느 날 연희동을 둘러보다가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매료됐죠. 동네의 분위기가 제가 공간을 얻으려는 이유와도 잘 맞았고요. 이곳을 선택한 건 동네의 분위기 덕이 컸어요.


흥미로운 전개예요. 인터뷰 프로젝트가 어떻게 편지라는 아이템으로 이어진 건가요?

인터뷰 내용을 어떤 형태의 글로 정리할지부터 정했어요. 에디터 시절에 만들어왔던 잡지나 책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책으로 엮기에 저는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많은 독자를 보유한 작가도 아니니까 판매 수익을 보장할 수 없었죠. 더구나 평범한 사람이 인터뷰이니 차별성 면에서도 고민이 됐고요. 그래서 질문을 바꿔 생각해봤어요. ‘이 글을 가장 궁금해할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랬더니 인터뷰이 자신이라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 사람을 위한 콘텐츠가 된 거군요.

네. 인터뷰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죠. 이걸 수익화해야겠다는 생각은 공간이 생기면서부터였어요. 매달 월세를 내야 했으니 유료 서비스로 전환해 하나의 서비스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편지라는 콘셉트가 더 잘 돋보일 수 있도록 ‘레터 서비스’라 이름 짓고, 이용 가격을 7만원으로 책정했어요. 이왕 공간에 방문하는 김에 편지지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매대를 설치하고 제품을 진열하며 가게의 모습을 갖추게 됐어요. 사실 레터 서비스가 메인, 편지 관련 제품 판매가 서브인 형태가 초반 제가 생각한 가게의 모습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편지 가게로 더 많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이 찾아와주고 계세요.



레터 서비스로 자금까지 몇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나요?

지금까지 20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는데, 현재는 가게 운영에 좀 더 집중하느라 잠시 쉬고 있어요. 그리고 알아버린 거죠.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그 뒤에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들이는 노력을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가격이라는 걸요.(웃음) 수익 구조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는 초보 창업가의 실수였던 거죠.


잡지사의 에디터로 인터뷰를 하는 것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평범한 주변 인물이 인터뷰이가 된다는 것도 가장 다른 점이었을 테고요.

너무 어려웠어요. 잡지의 인터뷰는 특정한 이슈나 스토리를 지닌 분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스템이지만, 레터 서비스는 인터뷰이가 원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이었거든요.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역할 외에도 그분들이 좀 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더라고요. 마치 토크쇼의 MC처럼요.(웃음) 더구나 비용을 지불하고 오신 분들이니, 그분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개인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 글월이라는 편지 가게로 재탄생되기까지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요.

처음엔 레터 서비스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에 모든 방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지금 판매하고 있는 편지 제품들도 원래는 인터뷰이가 받아볼 편지지를 제작한 것에서 시작된 거였죠. 서비스의 만족도는 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로 정리하는 것이 주효하겠지만, 비주얼적으로도 잘 갖춘 서비스로 보이고 싶었어요. 어떤 종이를 사용할지, 크기는 어떻게 할지, 디자인 콘셉트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게 에디터가 일하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기획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는 게 좋을지 비주얼까지 관여해야 하죠. 글월의 페르소나로 삼은 레퍼런스는 무엇이었나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프랑스 여성 철학자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정갈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을 하고 손톱엔 항상 매니큐어를 바르는,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 분이에요. 글을 쓰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제겐 흥미롭게 느껴졌죠. 옷을 멋지게 입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쓴다면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웃음) 그분이 과연 편지 가게를 열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싱크를 맞춰갔어요. 보부아르의 흑백사진 속에 글월의 제품이 섞여도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전체적인 제품의 톤&매너는 담백하고 화려하지 않은 쪽으로 정했어요. 시선이 분산되는 화려한 컬러나 디자인 요소는 지양하고, 편지지는 그야말로 편지를 쓰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죠.


창업하고 싶은 목적을 뚜렷이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굉장히 기본에 가까운 이야기지만,그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거예요.


레퍼런스를 구체화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제가 선택했던 방식은 안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었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을 한국말, 영어, 프랑스어로 검색해 최대한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자 했고, 쌓아둔 자료도 여러 번 보며 모호한 상태로 흩어져 있는 상을 하나의 결로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어요.

 

레퍼런스에 걸맞은 전반적인 기획 방향을 잡는 것이 창업가이자 기획자의 역할이라면, 그다음 단계는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의 팀이 진행하는 전문 영역이잖아요. 그 단계에선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해요.

저의 경우는 팀을 이뤄 창업한 케이스가 아니었잖아요. 글월의 브랜딩을 이루는 요소의 디자인은 심석용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 외 제품 디자인, 촬영, 회계, 마케팅, SNS 관리 등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부분을 혼자 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단련했던 것 같아요. 예전처럼 기댈 회사도, 함께하는 팀원도 없이 혼자 하다 보니 제 수준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거든요. 제가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엔 슬프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해내는 수밖에.(웃음) 제품 사진 한 장 찍는 데도 누워서도 찍어봤다가,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도 찍어봤다가 혼자 난리법석을 쳤죠.


1인 창업가로 고군분투하며 체득한 것이 있나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나가는 지구력을 얻게 됐어요. 전문 디자이너에 비해 역량이 한참 못 미치는 스스로가 너무 답답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절대 놓지 않았죠. 그리고 고민하는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며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변수를 예측해 결과물에 반영한 것이 있다면요?

펜팔 서비스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의 펜팔은 이름과 나이, 성별, 취미, 주소 등 개인 정보를 공유받은 뒤 편지를 쓰는 방식이었잖아요.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워낙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많으니 기획부터 꼼꼼히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개인 정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글월만의 방식을 고안하게 됐어요. 매장 내에 마련한 자리에 앉아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보내는 사람의 정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장치를 넣기로 한 거죠. ‘명랑한’, ‘느긋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등 50개의 형용사를 봉투에 적어두고, 자신에게 해당하는 표현을 체크하게 했어요. 봉투 위쪽엔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뒤 스티커로 붙이고요. 자신의 표식까지 다 붙인 후에는 카운터에 편지를 접수하고, 다른 이가 써둔 편지를 한 통 가져가는 방식이에요. 예측할 수 있는 문제는 미연에 방지하면서 펜팔이라는 경험은 그대로 가져가고자 했죠.



덕분에 펜팔 서비스는 글월을 대표하는 서비스가 됐죠. 현재 글월의 수익은 얼마나 늘었나요?

현재 펜팔 서비스의 비용은 1만원으로 책정돼 있어요. 이 비용 안에는 펜팔 서비스 전용으로 제공되는 편지지와 봉투, 다른 이의 편지를 가져가는 것이 포함돼요. 사실 서비스보다 제품에서 더 많은 매출을 내고 있지만, 펜팔 서비스를 기준으로 말씀드린다면,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연희동의 본점과 성수동에 위치한 2호점 양쪽에서 550명 정도의 이용자 수치를 달성했어요. 이 수치는 매달 유지되거나 조금씩 더 늘어나는 추세예요. 두 매장을 방문해 펜팔 편지를 쓰는 고객은 매일 평균 10~15명이 되는 셈이죠. 2021년 12월에 성수동 LCDC에 글월의 두 번째 공간을 열었고, 1년에 최소 12개 이상의 제품을 부지런히 출시한 것도 수익의 기반이 됐어요. 현재는 3명의 팀원과 글월을 꾸리고 있고요. 저는 고객들이 만들어주시는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요. 성수 매장 오픈을 통해 글월의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호점인 성수 레터룸은 연희동의 레터 숍과 사뭇 다른 분위기예요.

연희점은 따뜻하고 소박한 분위기라면, 성수동은 과거 공장이 있었던 동네 분위기에 맞게 러프하면서도 세심함이 깃든 분위기로 연출했어요. 글월이 지닌 또 다른 면모를 시각적으로 보여줬던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을 통해 많은 분이 글월의 다음 행보에 대해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져주시더라고요.

 

소비자가 왜 글월에 시간과 돈을 쓴다고 생각하나요?

글월은 제품력에 기반한 브랜드라기보다 편지를 매개로 한 아이디어와 서비스에서 시작된 브랜드예요. 점점 사라져가는 편지라는 소재에 깃든 낭만을 좋아해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펜팔 서비스는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고요. 앞으로 저희의 역할은 편지가 사라지지 않고 편지 쓰는 문화가 계속될 수 있도록 거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싶은 서비스나 제품이 있나요?

셀프 사진을 찍는 포토 부스가 인기인 요즘 트렌드에 맞춰 레터 부스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연희와 성수, 혹은 그 외의 지역에 편지를 쓸 수 있는 부스를 만들어 편지 쓰는 문화가 자리 잡히게 하고 싶어요. 제품도 지금까지는 편지지와 봉투 위주였다면, 편지를 쓰는 순간을 구성하는 모든 걸 글월의 이름으로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걸 저는 ‘데스크 웨어’라 이름 지었는데요, 연필꽂이부터 책상이나 조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연희동과 커피를 꼽을래요. 글월을 창업한 이후론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까 스스로에게 복지를 주지 못했는데, 연희동이 제게 숨을 고르며 다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곳이 돼준 것 같아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동네에 많고요.(웃음) 마음이 시끌시끌하다가도 이곳에 오면 한결 편해져요. 연희동에서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To Do’와 ‘Not To Do’ 조언을 해준다면?

상상하는 그것을 어떻게든 구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기준이 되면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창업을 시작한 후에는 게으름을 경계하세요. 회사에 다닐 땐 일이나 생활하는 면에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지만, 창업은 스스로 게을러질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창업하고 싶은 목적을 뚜렷이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굉장히 기본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그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거예요.


창업가로서의 야심은?

많은 돈을 벌어 빌딩을 사겠다는 야심보다는 3층짜리 단독 주택을 사서 1, 2층은 가게로 쓰고 3층은 사무 공간으로 쓰는 정도의 야심을 꿈꿔요.(웃음) 그곳이 모두에게 숨어 있던 본인의 정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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