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편안한 움직임
무브웜 대표 이정은, 1990년생
“꼭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편한 옷, 선한 옷,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드는 ‘무브웜’의 대표. 요가복이자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은 내가 입는 옷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요가를 좋아하나요?
네. 정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요. 10년 정도 했어요. 요가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거든요. 주로 한 동작을 길게 유지하는 하타 요가를 해요.
패션 의류 중에서도 요가복으로 브랜드를 창업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제가 무브웜을 창업한 2017년에도 요가복은 많았지만, 몸에 타이트하게 붙는 레깅스 위주였어요.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일상복은 디자이너도 스타일도 다양한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가를 할 때 입는 옷은 유니폼처럼 다 똑같다는 게요.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몸을 조여서 몸매를 강조하지 않는, 편안한 핏의 운동복이라 좋습니다. 품이 넉넉한 스웨트팬츠가 특히 좋아 보여요. 발리로 요가하러 갔을 때 요기니들이 이런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우붓에서 요가 수업을 들었는데 요기니들의 자유분방한 옷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한국의 동시대적인 유행을 섞어 일상복으로도 기능하게 하고 싶었죠. 무브웜의 키워드는 움직임이에요. 움직일 때 얼마나 편안한지 보여주기 위해 모델들도 크게 움직이는 자세를 취해요. 한 고객이 후기로 옷을 입어보고 나서야 무브웜이 왜 이렇게 모델 사진을 찍는지 알게 됐다고 남긴 글이 기억나네요.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요가뿐 아니라 현대무용이나 다른 운동을 할 때도 적합한 옷이에요.
운동할 때 넉넉한 핏의 옷을 입어도 된다는 생각,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저는 운동할 때 굳이 노출을 하거나 너무 달라붙는 옷을 입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출근할 때도 카페에 갈 때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추세가 좀 바뀌었어요. 제가 무브웜을 론칭할 때만 해도 요가원 선생님들이 “레깅스를 입어야 자세를 확인하면서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모든 요가원에 거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요가원에는 대부분 거울이 없어요.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보다 자신의 몸에 더 집중하고, 편안한 옷을 입죠. 특히 제가 하는 하타 요가는 눈을 감고 오롯이 자기 몸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일상복은 디자이너도 스타일도 다양한데, 요가를 할 때 입는 옷은 유니폼처럼 다 똑같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죠.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당신에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란 어떤건가요?
내가 좋아하는데 남들에게도 먹힐 수 있는 걸 찾아야 해요. 무엇보다, 타깃은 좁더라도 날카롭고 정확할 것. 저는 넓은 대중보다 좁은 마니아층이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의류든 음식이든 모두가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하게 찾는 사람이거든요. MZ세대는 저 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갔던 어떤 피자집 사장님이 “모든 사람이 한 번 시키는 피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계속 찾는 피자를 만들 것”이라는 문구를 벽에 써놓으셨는데, 그 말에 너무 공감했어요.
무브웜(Movewarm)에 담긴 의미는 뭔가요?
문자 그대로 ‘따듯한 움직임’이라는 뜻이에요. ‘어떤 옷을 만들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저는 선한 옷을 떠올렸어요. 내 몸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더 선한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편안하고 지속 가능한 옷을요.
선한 옷이란 어떤 걸까요?
옷은 그걸 입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옷을 포장하는 폴리백을 전부 종이 패키지로 바꿨어요. 원단도 되도록 폴리가 아닌 잘 썩는 면을 쓰고, 폴리를 사용해야 하면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단을 쓰죠. 스크래치나 얼룩 등 약간의 하자가 있는 옷들을 일일이 타이다이로 염색하며 리사이클링해 재판매하는 프로젝트도 했는데, 사실 이렇게 만들면 비용이 더 나가요. 그런데 굳이 그런 작업을 부단히 해서 저렴하게 팔았어요. 약간의 하자 때문에 옷을 버려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나치게 마르거나 지나치게 볼륨을 강조하지 않는, 다양한 나이대와 평범한 체형의 모델들을 건강하고 밝게 찍은 룩북도 보기 좋아요.
저는 우리 옷을 입는 모델이 무해하고 건강한 사람이길 바라고, 그가 가지고 있는 바이브가 사진에 담기길 바라요. 그리고 저는 80대에도 요가를 하는 실버 요기니가 되고 싶기 때문에, 할머니 세대가 편하게 입으시는 걸 보면 뿌듯하더라고요.
움직임이 편한 옷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면에 스판을 섞은 원단을 쓰는데, 해외 마켓에서 발품 팔아 공수한 거예요. 신축성과 복원력이 최고죠. 면 스판으로는 가장 좋은 원단이라고 자부해요. 크게 움직일 수 있고, 자주 움직여도 무릎이 툭 튀어나오지 않아요.(웃음) 요가를 하다 보면 몸이 계속 바닥에 닿게 되는데 쓸리지 않도록 봉제의 디테일에도 꼼꼼히 신경 써요.
그래픽디자이너 출신이죠?
네.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저는 원래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학생 때부터 화장품 회사, 패션 회사, 인테리어 회사,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VMD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인턴을 하며 제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를 찾았죠. 그러다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회사에 입사했는데, 회사 대표님이 요가복을 론칭한다는 거예요. 마침 요가를 하던 제가 담당이 돼 시중의 모든 요가복을 다 뜯어보고 봉제하고 샘플링해봤어요. 그 회사는 도중에 사업을 접었지만 저는 계속 요가복을 만들고 싶어 나와서 요가복 브랜드를 창업했죠.
마음먹고 실제로 창업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6개월. 금방이죠? 작은 회사다 보니 그래픽디자인뿐 아니라 의상 디자인과 샘플링부터 웹사이트 디자인 및 운영, 카드사 연결, 고객 응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제가 전부 다 하면서 내가 직접 사업체를 차리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란 걸 깨달았죠.(웃음) 인턴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것도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는 대표가 되는 데 도움이 됐고요. 그렇게 28살에 창업을 했어요.
창업 자금은 얼마였나요?
퇴직금 500만원. 전부 옷 만드는 데 썼고, 친구를 모델로 세우고, 웹사이트 제작도 촬영도 전부 직접 했어요.
창업 과정에서 만난 가장 큰 산은 뭐였나요?
가장 힘들었던 건 인스타그램 팔로어 1000명을 채우는 거였어요. 인지도가 전혀 없으니 팔로어를 모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무브웜 옷과 다른 유명한 브랜드의 옷을 함께 스타일링해 그 브랜드까지 태그하는, 기생에 가까운 전략을 썼죠. 저희 옷은 청바지 같은 일상복과 믹스매치해도 잘 어울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증정으로 보내면 피드에 올려주시는 모델 분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론 쉽지 않아요. 그 외 마케팅은 아예 안 했죠.
마케팅 없이 어떻게 체급을 키웠어요?
그래서 오래 걸렸죠. 2017년부터 시작해 7년 차 브랜드거든요. 제 성향인 것 같은데, 저는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홍보를 공격적으로 하는 브랜드는 왠지 신뢰가 안 가요. 꾸준히 봐온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천천히 좋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저도 그렇게 저만의 페이스로 브랜드를 키웠죠.
첫 수익이 발생했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첫 수익은 지인의 구매였지만, 초창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탈리아에서 온 주문이었어요. #yogawear라는 해시태그를 구글에서 타고 들어와 너무 사고 싶다며 DM을 주셨죠. 페이팔 계정으로 결제하고 EMS로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첫 수익과 지금의 수익, 몇 퍼센트나 늘었나요?
1000퍼센트? 첫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했으니까요.(웃음)
창업가로서 당신의 야심은?
세계로 나가고 싶어요. LA에 쇼룸을 만드는 걸로 시작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요가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광활한 자연이나 우붓의 밀림 속 같은 공간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해 그 안에서 요가를 하는 영상이라든지, 요가할 때 틀어놓기 좋은 플레이리스트와 피워놓을 향을 추천한다든지, 요가 문화를 알리고 맞춤형으로 큐레이션해주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을 것 같거든요.
한국에서 젊은 여성 창업가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의류 제조 공장 사장님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에요. 공장에 발주해도 ‘얘네가 정말 작업을 할까?’ 하는 의문의 눈초리로 보고, 당연한 걸 물어봐도 “그런 걸 왜 물어보냐” 하고, ‘네가 뭘 알아’ 같은 적대적인 태도에 자존심 상하는 순간이 많아요. 그럼 저는 맞받아쳐요. 아주 상세하게 피드백을 하면서 ‘나 많이 알아’라고 어필하죠. 언젠가는 옷이 작업 지시대로 안 나온 거예요.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따박따박 ‘그때 어떤 상황에서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하셨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상기드렸어요.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같이 일하는 무브웜의 디자이너 언니가 이런 걸 잘해 큰 도움이 됩니다.(웃음)
타깃은 좁더라도 날카롭고 정확할 것. 저는 넓은 대중보다 좁은 마니아층이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MZ세대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하게 찾거든요.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는?
키프리스(www.kipris.or.kr)에서 먼저 내가 정한 회사 이름을 찾아보고 상표 등록부터 하세요. 좀 잘되면 등록해야지 하고 미뤘다가 그 이름이 이미 있어 중간에 브랜드명을 바꾸는 경우를 몇 번 봤어요. 그리고 초반에 지인들을 최대한 동원하세요. 생각보다 주변에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는 매력적인 친구에게 모델을 부탁하고, 그래픽디자이너인 남편이 로고 디자인을 해주고, 스타일리스트 친구가 직접 착용 후 사진을 찍어주고, 다른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구가 공장을 소개해줬어요. 가족이든 지인이든, 그들이 가진 재능과 매력을 최대치로 활용하세요. 물론 나중에 그들에게 보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죠.
지금의 시장이 10년 뒤에는 어떻게 변화할 거라 예측하나요?
얼마 전 출산하신 요가 선생님이 있는데 아기에게도, 노인에게도 요가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길 들으니 저도 아기 요가복도, 실버 요가복도 만들고 싶어졌죠. 10년 후면 실버 요가복에 대한 수요가 더욱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롤모델인 브랜드 혹은 인물이 있다면?
얼마 전 ‘파타고니아’ 대표인 이본 쉬나르 회장이 전 재산을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비영리 재단에 기부했거든요. 자신과 아내, 두 딸의 지분 100%, 약 4조원을요. 파타고니아는 늘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였지만 정말로 진심이었다는 게 여지없이 드러난 거죠.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멋져요. 영감을 주는 인물은 뮤지션 소금이에요. ‘멈블링’하는 보컬로 호불호가 갈리는 뮤지션인데, 저는 따듯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의 노래가 정말 좋아요. 저는 원래 모두가 다 좋아하지 않는 걸 선호하거든요.(웃음)
워라밸은 어떻게 찾으려고 하나요?
저는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굳이 삶과 일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요. 밖에 나가서 멋있는 전시를 봐도, 카페에서 예쁜 집기를 봐도 저희 브랜드의 미감을 높여주는 일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뭘 봐도 저희 브랜드의 성장과 연결 짓는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이게 일인가요? 일이겠죠?(웃음) 그렇다고 워커홀릭처럼 내내 일만 하진 않아요. 노는 시간도 많은데 그게 다 일과 연결된다고 생각할 뿐이죠.
요즘 눈여겨보는 MZ세대 인물이나 그들의 브랜드가 있나요?
연진영이라는 1993년생 가구 디자이너이자 작가. 쓰고 남은 자투리 스펀지, 버려진 황동 파이프, 결함이 있어 사용되지 못한 패딩 소재 등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가구를 만들죠. 리사이클링해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매번 이렇게 다른 물성을 이해해 작업한다는 것도 굉장히 멋져요. 60초 안에 잠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는 매트리스 브랜드 ‘식스티세컨즈’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더 일찍 무브웜을 만들겠습니다.(웃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여러 한계를 딛고 여성 작가로서 활동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고객들의 리뷰와 우리 팀원들. 초반에 아무 마케팅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사용하고 리뷰를 쓴다는 게 그렇게 큰 감동일 수 없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리뷰를 찾아보며 문제점을 개선하고 힘을 받아요. 그리고 우리 팀원들, 워킹맘으로서 일도 육아도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와중에 대학원도 다니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모습이 제게는 엄청난 자극제죠.
창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To Do’와 ‘Not To Do’ 리스트를 리스트를 말해준다면?
처음부터 돈을 많이 들이지 마세요. 어차피 처음 시작할 때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요. 그 실패에 돈을 너무 많이 써버리면 다음 기회를 잃게 돼요. 돈을 들이지 않고 스스로, 혹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많은 걸 하세요. 이를테면 유튜브를 제작하는데 나는 옷만 만들고 모델, 헤어, 메이크업, 포토, 영상, 편집은 전부 외주를 줘야 한다면 그만큼 승산이 없어지는 거죠. 확신을 가진 대박 아이템이 아닌 이상, 그런 리스크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야 할 것은 리서치입니다. 처음엔 막막하겠지만 상표 등록법이나 플랫폼 이용법 등을 차근차근 공부해나가야 해요. 유튜브에서 관련 콘텐츠를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창업을 고민하던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빨리 해!(웃음) 어떤 상황이든 어차피 변수는 늘 있고 고민해봐야 늦어지기만 합니다. 이거다 싶은 창업 아이템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빨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