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청년 농부 성장기


카페 감자밭 대표 이미소, 1991년생

청년 농부에서 1인 창업가로, 카페 감자밭을 창업해 감자빵 하나로 연매출 100억을 달성했다. 이제 150명의 직원을 둔 농업회사법인 ‘밭’을 설립해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치를 전하는 기업을 꿈꾼다.



‘춘천 감자빵’을 통해 감자에 이렇게 다양한 품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감자 종자는 100종 남짓해요. 세계에는 3000종이 존재하고요. 하지만 보통 시장이나 마트에 유통되는 감자는 사실 10종 미만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흰색 감자가 대부분이에요. 색 또는 모양이 특이한 품종은 생산이 여의치 않고, 생산되더라도 유통이 쉽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농부인 아버지께 감자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요. 감자의 품종을 지키는 것은 왜 중요한가요?

우리가 주로 먹는 감자는 좀 더 맛있게 개량된 품종이에요. 하지만 그런 품종 하나만 존재한다면 자연재해 혹은 어떤 이유로 인해 생산이 여의치 않을 때 식량 주권에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 옷 가게에 색깔과 디자인이 모두 같은 옷만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럼 경쟁할 수 있는 건 가격밖에 없잖아요. 농민에게도 경쟁할 수 있는 게 원물의 가격뿐이라면 농가 소득은 물론이고, 산업 전반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거죠. 결국 다품종을 보존하는 건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유지하는 방법이에요.


회사를 다니다가 어느 날 아버지의 연락을 받게 되죠. 그것도 대표님의 인생이 뒤바뀌는 연락을요.

하하하. 저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청년이었는데요, 감자 농사에 큰 손실이 나면서 아버지께서 제게 도와달라고 연락하셨어요. 그렇게 춘천에 내려가게 됐죠. 벌써 7년이 됐네요.


연락 한 통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춘천으로 내려가기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예요. 어떤 결심이었나요?

사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내려간 건 아니었어요.(웃음) 왜냐하면 생각보다 서울에서 춘천이 가까워요. 용산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멀리 간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25살 겨울이었는데, 사실 그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을 나이기도 하잖아요. 내려갈 때만 해도 ‘여차하면 다시 서울에 오면 되지, 뭐’ 이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마주한 춘천은 어땠어요?

동네에 치킨집은커녕, 편의점도 없었어요. 배달의민족 앱을 켜면 ‘텅’이라는 표시가 떴으니까요. 2년이 지났을 무렵에야 치킨집 하나가 생기더라고요.(웃음)


내려가자마자 한 건 뭐였나요?

감자 농사의 수익률부터 따져봤는데, 그리 희망적이진 않았어요.(웃음) 쌓여 있는 감자를 썩어서 버리지 않게 소진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만약 제가 해야 하는 일이 감자 농사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10년 동안 감자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걸 지켜봐왔기 때문에 제게도 사명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가 생산하는 감자 중에 아버지의 이름을 딴 ‘청강’이라는 품종도 있고, 장미 빛깔을 내는 ‘로즈 감자’도 있어요. 이 감자는 지금 감자빵의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죠. 노력으로 일군 이 가치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창업의 길을 걷게 된 건 오랜 시간 투자를 해오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겠구나 싶어요.

1만%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삶을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돈이 무엇인지, 수익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국가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누군가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투자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가르침을 주셨죠.



그렇게 시작된 창업가의 첫걸음, 어디로 향했나요?

아무래도 전 농업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농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농부들의 모임인 ‘그로워스’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농부 언니, 오빠들을 만나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죠.


청년 농부로서 어떤 시도들을 했어요?

감자 원물을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해 즙을 내려본다던가, 감자 피클, 막국수 면 등 여러 가공식품을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가공식품은 누구나 만드는 식품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낮았어요.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개발하게 된 게 ‘예뻐보라’였어요. 보라색을 띠는 ‘보라 밸리’라는 감자를 분말형 선식으로 만든 제품이었죠. 농산물 가공 품평회에 나가 대기업 유통사에 입점 제안을 받는 성과도 이뤘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입점 수수료가 거의 50% 정도였거든요. 그걸 감당하면서 공급하려고 하니 제품 하나에 300원 정도를 보태야만 판매가 가능한 수익 구조가 나오더라고요. ‘유통이란 이런 거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며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혼자 고군분투한 지 3년 차가 되는 시점이었죠.



감자빵으로 얻은 수익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 나아가서는 사회의 것이라고 늘 배워왔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3년 동안 쓰디쓴 실패의 맛을 봤네요.

맞아요. 그때까지 매해 작게는 5천만~6천만원, 크게는 1~2억의 손해를 봤어요. 저온 창고에 제 키의 3~4배 높이로 쌓인 감자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나서 도저히 못 보겠는 거예요. 대단한 목표나 마인드셋을 세울 겨를도 없이 그때는 매일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그때마다 당신을 포기하지 않게 지켜준 마음속 문장이 있다면?

전 행복론을 좋아해요. 관련 책도 자주 읽는 편인데, <카네기 행복론>과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추천해요. 전체적인 메시지는 “하루하루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말해요.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오늘은 어떤 것에 집중했는지를 바라보려고 노력했어요.


매일에 충실하게 지내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나요?

네. 우연히 청강대학교에 푸드 스쿨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장학생으로 입학할 기회를 얻게 됐어요. 과정의 일환으로 전남, 진안, 무주, 거창 등 국내의 팜 레스토랑 투어를 하며 ‘이수미팜베리’ 대표님을 뵙게 됐어요. 강의 때 대표님이 “팜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었던 건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대표님처럼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게 된 거죠.


카페 ‘감자밭’의 터가 생긴 거군요.

맞아요. 그런데 그 무렵 제게는 사람들이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생겼어요. 그동안 만들었던 제품 모두 잘 안 됐고, 제가 감자로 뭘 만들기만 하면 다들 왜 고구마로 만들지 않았냐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고구마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 생긴 거죠.(웃음) 그러다 보니 카페를 오픈하고도 초반엔 고구마 감자 마늘빵, 감자 단팥빵같이 감자에 무언가를 더한 제품만 만들었는데, 고객들의 반응도 기대 이하였어요.


그 후론 어떤 전략으로 접근했나요?

감자 본연에 집중해보라고 아버지께서 인사이트를 주셨어요. 그러고 나니 보였죠. 방학 때 할머니 집에 가면 늘 먹었던 추억의 감자요. 그 포인트에서 2가지 어젠다를 세웠어요. 감자와 모양이 똑같고, 원물이 절반 이상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것. 청강 수업 동기의 소개로 홍상기 셰프님을 만나 셰프님과 함께 감자빵을 만들었어요.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시도했다는 게 대단해요.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됐을 텐데 말이에요.

200가지 넘는 메뉴를 테스트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큰돈을 들여 한 건 아니었어요. 빵은 재료와 오븐 하나만 있으면 만들 수 있잖아요. 오븐도 처음부터 값비싼 전문가용 제품을 산 게 아니라, 먼저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부터 해보고, 그게 잘되면 100만원짜리 기계, 그다음은 1000만원짜리 기계 이런 식으로 단계를 차근히 밟아나갔어요.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허가도 투자금이 크게 들지 않는 것부터 받으니 금전적 부담이 덜했죠. 유통은 불가능하지만, 소량으로 만들어내 카페에서 팔 수 있는 즉석 제조 판매로 먼저 시작했어요.


창업을 할 때, 지금 시도해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든 너무 크게 시작하기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또는 자본이 적더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치킨집을 창업하고 싶다면 대출받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에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감을 익히며 경험해보는 거죠. 해봤는데 아니다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방향을 바꾸고 다시 나아가기에도 리스크가 적고요.


끈질긴 노력 끝에 탄생한 감자빵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어요.

그러게요.(웃음) 그동안 개발했던 아이템과는 반응이 다르다는 게 제게도 느껴졌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겠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아요. SNS상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덕분에 카페를 찾는 손님도 많아졌죠. 그땐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감자빵만 팔았죠. 그때부터 가장 염두에 둔 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같은 퀄리티로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 목표로 하나둘 직원도 고용하고, 30평 공장에서 시작해 60평 공장을 임대하고, 그게 지금의 200평 공장까지 이어오게 됐어요. 100억 매출이라는 값진 성과도 올릴 수 있었죠. 정식으로 법인 회사도 설립하고요.

 

사람들이 감자빵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감자 농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저희가 쌓아왔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어떤 사명감으로 이 종자를 지키셨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이어왔는지를 지켜봐주신 분이 많거든요. 춘천 감자빵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입소문이 날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이 힘을 보태주신 덕분이에요.


수익적인 부분에서도 유의미한 결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외부에서 ‘100억 매출 회사’로 바라봐주시지만, 놀랍게도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월급은 지난해가 돼서야 처음 받았어요. 매출로 얻게 된 수익금을 저희는 계속적으로 재투자해왔거든요. 저는 지금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원룸에 사는데, 그게 행복해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나 행복의 정의가 다를 텐데, 저에게는 결국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노를 저으며 함께 가는 거더라고요.(웃음)


회사와 미래를 위한 재투자라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큰마음이에요.(웃음)

그게 기업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 결실은 저 혼자만 잘해서 된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배부르게 살겠다’는 마인드는 처음부터 가진 적 없어요. 감자빵으로 얻은 수익은 사회의 것이라고 늘 배워왔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볼보 하면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것처럼 농업 신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대표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날을 꿈꿔요.


법인 회사를 설립한 만큼 보다 체계를 갖추고 움직일 것 같아요. 현재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경영 지원을 돕는 팀과 MD팀, R&D팀, 품질 관리와 생산을 관리하는 팀, 각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감자 생산과 감자 탈피를 담당하고 제작하는 팀까지 세분화해서 조직을 꾸렸고, 지금은 150명 이상의 직원과 함께하고 있어요.


100명이 넘는 직원이라니, 서울이 아닌 로컬에서 청년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무척 놀라워요.

피부에 와닿는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청년이 없다는 거예요. 아까 말했던 동네의 치킨집 하나로 제 삶의 질이 180도 달라진 것처럼, 지방에서 한 명의 청년 노동력이 들어오고 나가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거든요. 특히 요즘 청년들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삶의 터를 옮기지 않아요. 결국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과연 이곳이 성장할 수 있는 일터인가 하는 점이에요. 저희 역시 함께 일하고 싶다는 비전을 주기 위해 지키는 원칙이 있어요. ‘기회와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뒀고, 실제로 MD로 입사한 한 친구는 7개월 만에 최고 책임자 직급인 C 레벨로 승진했어요. 다른 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고요. 이런 비전을 드려야 일하는 분들께도 저희와 일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해요.


감자밭의 대표로서 느끼는 자부심이 있다면요?

감자 탈피 작업을 담당하시는 84세의 여사님이 계세요. 가족들은 건강을 걱정해 말리지만, 2년째 근무하시죠. 여전히 일을 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신 적이 있어요. 저희는 인력난을 겪는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이런 움직임이 있어야 결국 농촌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대로 고충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1인 창업가가 리더의 역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혼자 일할 땐 그저 눈앞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했는데, 회사의 리더로선 멀리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시야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요. 지금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이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라 노력해야 할 점이 너무 많죠.

 

사랑받는 제품엔 의도치 않은 논란이 뒤따르기도 해요.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미투 상품을 출시한 적이 있었잖아요.

물론 속상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체득한 것도 있어요. 만약 저희와 같은 방법으로 국내산 감자를 사용해 빵을 만든다면, 결국 감자 농산물 소비에 일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의 철학을 공유하는 곳일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지금은 저희가 등록한 상표를 침해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특별히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감자빵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지역사회 내 청년 유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앞으로 농업 산업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요?

제2의 감자밭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지역의 청년들이 저희를 벤치마킹한다면 농업과 지역사회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볼보 하면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것처럼 농업 신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대표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날을 꿈꿔요.


머릿속에 그리는 꿈에 지금 얼마큼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나요?

저흰 아직 프롤로그도 쓰지 않았어요.(웃음) 제가 존경하는 인물인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직물 공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투자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93세가 된 지금까지 일을 하고 계신데, 저도 그분처럼 오래 일하고 싶거든요. 앞으로 제가 일할 날이 60년이 남았다고 봤을 때, 이제 겨우 5% 정도 온 거거든요. 저희가 어떤 모습으로 확장하고 발전할지 그 가능성은 무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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