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건들이 가장 열광하는 브랜드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 마케팅 전문가의 길을 걸어오셨더라고요. 그간의 커리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대학생 때 마케팅 원론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마케팅 분야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첫 직장에서는 수출 상품기획팀에서 근무했는데,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마케팅 전문가가 되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른 길엔 관심도 없었고요. 그래서 퇴사 후 대학원에 진학해 마케팅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마케팅이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산업군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 일용 소비재)산업에 들어와 지금까지 쭉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풀무원 지구식단의 브랜드 매니저를 맡게 되신 건가요?
🗣 풀무원에서는 PM(Project Manager)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입사 9년차에 운 좋게도 미국 법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2017년부터 미국에서 근무했죠. 그때 미국에서는 비욘드 미트(Beyond Meat)와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처럼 식물 기반 식품 기업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기 시작했어요. 그 트렌드 변화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당시 저는 풀무원 미국 법인의 두부 카테고리 마케팅 담당자였는데, 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비건 식품을 더 확대하려고 ‘플랜트 스파이어드(Plantspired)’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그 후 2021년 한국 본사로 돌아왔을 땐 지구식단 브랜드 론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 플랜트 스파이어드를 론칭했을 때 시장 안착까지 성공적으로 이끄셨잖아요. 대체육 스테이크 제품을 현지 레스토랑 체인에 납품시키기까지 하셨죠. 어떤 노하우나 인사이트를 얻으셨나요?
🗣 플랜트 스파이어드는 “Inspired by Plants, Delicious and Effortless”라는 슬로건 하에 대체육과 각종 두부 상품(두부를 넣어 만든 덮밥 소스, 양념 후 오븐에 구운 두부 등) 10개를 한 번에 출시했습니다. 단기간에 매대에서의 브랜드 존재감을 키우려 했고요. 온라인 광고도 동시에 집행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죠. 덕분에 소비자들이 가공된 두부와 대체육 불고기를 건강한 식물성 단백질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플랜트 스파이어드 이 전엔 두부, 소스, 대체육처럼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할 생각을 못 했었어요. 식품을 제조하는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제품을 통해 느끼는 가치와 혜택 위주로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결과적으로는 브랜드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게 된 아주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 인사이트를 한국에 적용시켜 만든 브랜드가 ‘지구식단’이고요.
💡 미국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적용된 건가요?
🗣 미국의 비욘드 미트는 생소한 카테고리를 소비자들에게 경험시키기 위해 출시 초기에 푸드 서비스 채널의 비중을 높이더라고요. B2C(Business to Consumer) 채널을 바로 공략하지 않았어요. 그걸 국내에 적용해서, 외식할 때 자주 접하게 만들고 나서 그 메뉴를 가정에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했어요. 다른 F&B 기업과 콜라보한 메뉴를 론칭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식자재라서 사용을 주저하는 소규모 매장에는 ‘지구식단 있는 집’이라는 캠페인으로 제품을 한 달 동안 무료로 제공하고, 그 재료를 활용해 독자적인 메뉴를 구성하게 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 현재는 ‘지구식단’ 브랜드 매니저로서 전략 수립부터 설비 투자 검토까지 맡고 계신다고요. 결국 사업 전반을 다 담당하시는 건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 물론 혼자 하는 건 불가능하죠.(웃음) 지구식단 마케팅 팀에 있는 마케터들이 각자 담당하는 제품을 맡아 개발합니다. 제 업무를 정리하자면 크게는 지구식단의 브랜드 하이어라키(Brand Hierarchy)를 정립하고, 브랜드 에센스와 가치를 개발하고, 이를 사내와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수립에도 관여하는 겁니다. 향후 지구식단 브랜드가 풀무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중장기적인 시장 예측과 이를 기반으로 한 매출 예측까지 담당합니다. 그리고 매출 달성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지구식단 브랜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제품군을 설정해서 신제품을 개발하죠. 신제품의 콘셉트와 연구소에서 확보한 기술을 종합해 신제품 상품화 단계에 들어가면 설비 투자까지 검토하기도 해요. 매출 계획에 따른 생산 설비와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하거든요.
💡 지구식단 제품 중 사심을 담아, 상무님의 ‘최애’를 뽑아보자면?
🗣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풀무원만이 만들 수 있는 ‘결이 다른 텐더’가 최애입니다.(웃음) 본격적으로 치킨 텐더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건데, 일반 두부로는 절대 텐더의 질감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결두부를 만들었습니다. 특허받은 공정으로 만든 특수한 두부예요. 두부를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70겹 정도의 결을 만들었어요. 이 제품은 만들자마자 소비자분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바이럴도 자연스럽게 발생됐죠. 두부지만 치킨 못지 않다, 혹은 치킨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 식품 개발 시 개발 방향과 마케팅 방향은 어떻게 잡는지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이것만은 지키자’ 하는 기준도 있나요?
🗣 지구식단은 일상 식단 그대로, 좋아하는 메뉴를 그대로 식물성으로 맛있게 만들어 드시는 분들이 애쓰지 않고 쉽게,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동물성 원료 없이 맛있게 만들면서도 자사의 첨가물 최소 원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엄격한 제조 기준이 있습니다.
💡 상무님처럼 브랜드 매니저가 되려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뭘까요?
🗣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지치지 않는 끈기와 지구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렇게 세 가지가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혹은 제품을 담당한다는 건 그의 생로병사를 다 같이 경험하는 거예요. 소비자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음식을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즐기는지, 이 트렌드를 읽어야 성공 전략을 도출해낼 수 있고요. 콘셉트와 전략을 도출하고 상품화하기까지는 연구원, 생산, SCM, 영업, 디자인 담당 등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제대로 된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출시 이후엔 판매를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다시 리뉴얼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하니 끈기도 매우 중요하죠.
💡 상무님 이력을 보면 내내 열심히 달리신 것 같단 느낌이 들어요. 보통 직장인들은 3개월, 6개월, 9개월, 3년, 6년, 9년 마다 스트레스가 강해지는 ‘369 증후군’이 있다고들 하죠. 상무님도 겪으셨나요? 겪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돌아보면 369 증후군을 겪을 때쯤 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4년 주기로 근무하는 회사가 바뀌거나, 같은 회사에서라도 담당 제품의 카테고리가 바뀌거나, 아예 근무하는 나라가 바뀌거나… 성격상 정체돼 있거나 성장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못 견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변화하는 환경에 저항하기보다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최근 풀무원의 기세도 아주 좋더라고요. 푸드앤푸드테크대상에서도 5관왕을 거머쥐고, 최근 Vegan Tour to Korea 2023 에서는 기업 대표로 나서 식물성 지구식단 제품을 후원했죠. 컨퍼런스에서 상무님이 강연을 하시기도 했고요. 풀무원의 지구 식단 제품이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풀무원의 노력도 인정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 처음 지구식단을 론칭할 때 회사 내부에서 통합브랜드로 성공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해 주시고 이런 제품을 만들어 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비건분들의 감사편지를 받기도 하고, 특히 이번에 큰 상도 받으니 그간의 노력들을 인정받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처럼 지구식단이 여러 방면으로 알려져서 소비자들이 식품을 선택하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 미국에서의 경험도 있으셔서 비건, 대체식품 등에 대해 꿰고 계신지 오래 됐을 것 같은데요. 원래 비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 원래는 비건에 관심이 없었는데 미국 법인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저도 처음에는 논 비건들과 마찬가지로 비건 음식은 맛이 덜할 것 같다거나 비건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왠지 예민하고 까다로울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마인드에 변화가 생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같은 팀에 근무하던 30대 초반 직원과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그 직원은 늘 까페라떼의 우유를 오트밀크로 바꿔서 마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유가 환경에도 안 좋고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오트밀크로 바꾸면 나도 지구도 좋은 일을 너무 쉽게 실천할 수도 있고 심지어 더 맛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우유의 고소함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에 따라 오트밀크라떼를 마시기 시작했거든요. 그때가 아하 모먼트였던 것 같습니다. 우유와는 다소 다르지만 오트밀크만의 풍미가 있는데다가, 이 한잔을 마심으로 인해 지구환경에 좋은 일을 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서, 그 이후에는 까페라떼를 마실 때 3번 중에 2번은 오트밀크로 바꿔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지구식단도 소비자들에게 이런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식물성 식품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이 이처럼 쉬울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고, 먹던 메뉴 그대로 식물성으로만 바꿔도, 그게 매 끼가 아니라 하루에 한끼, 혹은 일주일에 하루만이라 하더라도, 내가 오늘 하는 이 작은 선택이 지구를 구하는 큰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을 여러분들이 꼭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 실천 방법이 비건이라고들 해요. 그렇다 보니 비건 식품을 만드는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도 있겠더라고요. 어떠신가요?
🗣 비건 제품이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려면 결국 맛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데요. 동물성 원료가 주는 특유의 맛과 향, 입 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식물성 재료만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직 어렵긴 합니다. 내부의 깐깐한 기준으로 레시피에 들어가는 첨가물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어 원가도 높아지고요. 맛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니 마케터와 연구원이 늘 논쟁을 벌이고, 판매 실적에 대한 부담도 느끼는 편이죠. 그래도 블라인드 맛 평가에서 경쟁 제품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영업 현장에서 신제품이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보람되죠. 그걸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습니다.
💡 친환경을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비아냥대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다가 허무함, 무력감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고요. 상무님이나 풀무원 내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는 부서지지 않겠지만, 백 개의 계란을 가지고 계속해서 친다면 적어도 바위가 계란으로 범벅이 되겠죠. 계란을 만나기 이전과는 다른 바위예요. 한 개인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개인들이 여러 명 모여서 같이 실천하면 반드시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 1도만 방향을 틀어도 몇 날 며칠이 모이면 처음 시작점과는 완전히 달라진 장소에 가있을 테니까요.
💡 한편으로는 비건의 중요성을 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중엔 육식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비건을 실천하고자 애쓰지만 죄책감 느끼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 완벽하게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빈도를 줄이는 노력으로도 충분해요. 오늘 고기 먹었으니, 내일 하루는 채식을 실천하면 되죠. 무언가를 강제로 억제하면 반드시 반작용이 생기거든요.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백 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낫다고 해요. 지치지 않고 계속 가는 게 중요합니다. 육식하는 날을 다이어트할 때의 치팅데이 같은 걸로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요. 육식이 안 된다, 나쁜 일이다, 이런 마음보다는 내 몸도 지구도 가볍게 해주자고 마음 먹는 게 좋아요. 지구 뿐만 아니라 내 식생활 패턴도 지속 가능하도록, 적절한 균형이 필요해요.
💡 좀 더 친환경을 위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하고 싶지만 이미 재직 중인 업계를 떠나기 힘든 사람들, 기존의 업무에 '친환경' 키워드를 추가하고픈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 ESG는 이미 기업의 경영환경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직종이건 어떤 일을 하건 본인의 업무와 ‘친환경’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산업에서 대표적으로 친환경을 실천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찾아보면, 거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업무 뿐만 아니라 하루 한끼 채식하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등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 지구식단은 풀무원의 지속가능성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론칭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단순한 카테고리 브랜드라기 보다는, 전사적으로 풀무원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고, 이와 동시에 압도적인 성장을 이루어야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24년도의 지구식단은 올해 대비 2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과제가 있어요. 또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지구식단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바른 먹거리 하면 바로 풀무원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듯이, 지속가능식품 하면 바로 지구식단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브랜드 매니저로서의 목표입니다.
풀무원 지구식단 지구식단 브랜드 매니저 박종희님에게 물었습니다!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 https://www.fastcompany.com/ : 각 영역별 혁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음.
- 브랜드보이 유튜브 : 광고 기획자 출신 유튜버. 잘 되는 브랜드에 대한 설명과 본인의 인사이트를 설명함
- 인스타그램 Mickey Kim 계정 : 전직 구글 출신. 글로벌 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어, 인간관계, 비즈니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30분.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유튜브. Outlook, Linked in
Feature Editor 박한나
Photo 개인 제공
현재 비건들이 가장 열광하는 브랜드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 마케팅 전문가의 길을 걸어오셨더라고요. 그간의 커리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대학생 때 마케팅 원론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마케팅 분야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첫 직장에서는 수출 상품기획팀에서 근무했는데,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마케팅 전문가가 되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른 길엔 관심도 없었고요. 그래서 퇴사 후 대학원에 진학해 마케팅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마케팅이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산업군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 일용 소비재)산업에 들어와 지금까지 쭉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풀무원 지구식단의 브랜드 매니저를 맡게 되신 건가요?
🗣 풀무원에서는 PM(Project Manager)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입사 9년차에 운 좋게도 미국 법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2017년부터 미국에서 근무했죠. 그때 미국에서는 비욘드 미트(Beyond Meat)와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처럼 식물 기반 식품 기업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기 시작했어요. 그 트렌드 변화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당시 저는 풀무원 미국 법인의 두부 카테고리 마케팅 담당자였는데, 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비건 식품을 더 확대하려고 ‘플랜트 스파이어드(Plantspired)’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그 후 2021년 한국 본사로 돌아왔을 땐 지구식단 브랜드 론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 플랜트 스파이어드를 론칭했을 때 시장 안착까지 성공적으로 이끄셨잖아요. 대체육 스테이크 제품을 현지 레스토랑 체인에 납품시키기까지 하셨죠. 어떤 노하우나 인사이트를 얻으셨나요?
🗣 플랜트 스파이어드는 “Inspired by Plants, Delicious and Effortless”라는 슬로건 하에 대체육과 각종 두부 상품(두부를 넣어 만든 덮밥 소스, 양념 후 오븐에 구운 두부 등) 10개를 한 번에 출시했습니다. 단기간에 매대에서의 브랜드 존재감을 키우려 했고요. 온라인 광고도 동시에 집행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죠. 덕분에 소비자들이 가공된 두부와 대체육 불고기를 건강한 식물성 단백질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플랜트 스파이어드 이 전엔 두부, 소스, 대체육처럼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할 생각을 못 했었어요. 식품을 제조하는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제품을 통해 느끼는 가치와 혜택 위주로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결과적으로는 브랜드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게 된 아주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 인사이트를 한국에 적용시켜 만든 브랜드가 ‘지구식단’이고요.
💡 미국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적용된 건가요?
🗣 미국의 비욘드 미트는 생소한 카테고리를 소비자들에게 경험시키기 위해 출시 초기에 푸드 서비스 채널의 비중을 높이더라고요. B2C(Business to Consumer) 채널을 바로 공략하지 않았어요. 그걸 국내에 적용해서, 외식할 때 자주 접하게 만들고 나서 그 메뉴를 가정에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했어요. 다른 F&B 기업과 콜라보한 메뉴를 론칭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식자재라서 사용을 주저하는 소규모 매장에는 ‘지구식단 있는 집’이라는 캠페인으로 제품을 한 달 동안 무료로 제공하고, 그 재료를 활용해 독자적인 메뉴를 구성하게 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 현재는 ‘지구식단’ 브랜드 매니저로서 전략 수립부터 설비 투자 검토까지 맡고 계신다고요. 결국 사업 전반을 다 담당하시는 건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 물론 혼자 하는 건 불가능하죠.(웃음) 지구식단 마케팅 팀에 있는 마케터들이 각자 담당하는 제품을 맡아 개발합니다. 제 업무를 정리하자면 크게는 지구식단의 브랜드 하이어라키(Brand Hierarchy)를 정립하고, 브랜드 에센스와 가치를 개발하고, 이를 사내와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수립에도 관여하는 겁니다. 향후 지구식단 브랜드가 풀무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중장기적인 시장 예측과 이를 기반으로 한 매출 예측까지 담당합니다. 그리고 매출 달성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지구식단 브랜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제품군을 설정해서 신제품을 개발하죠. 신제품의 콘셉트와 연구소에서 확보한 기술을 종합해 신제품 상품화 단계에 들어가면 설비 투자까지 검토하기도 해요. 매출 계획에 따른 생산 설비와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하거든요.
💡 지구식단 제품 중 사심을 담아, 상무님의 ‘최애’를 뽑아보자면?
🗣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풀무원만이 만들 수 있는 ‘결이 다른 텐더’가 최애입니다.(웃음) 본격적으로 치킨 텐더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건데, 일반 두부로는 절대 텐더의 질감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결두부를 만들었습니다. 특허받은 공정으로 만든 특수한 두부예요. 두부를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70겹 정도의 결을 만들었어요. 이 제품은 만들자마자 소비자분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바이럴도 자연스럽게 발생됐죠. 두부지만 치킨 못지 않다, 혹은 치킨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 식품 개발 시 개발 방향과 마케팅 방향은 어떻게 잡는지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이것만은 지키자’ 하는 기준도 있나요?
🗣 지구식단은 일상 식단 그대로, 좋아하는 메뉴를 그대로 식물성으로 맛있게 만들어 드시는 분들이 애쓰지 않고 쉽게,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동물성 원료 없이 맛있게 만들면서도 자사의 첨가물 최소 원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엄격한 제조 기준이 있습니다.
💡 상무님처럼 브랜드 매니저가 되려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뭘까요?
🗣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지치지 않는 끈기와 지구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렇게 세 가지가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혹은 제품을 담당한다는 건 그의 생로병사를 다 같이 경험하는 거예요. 소비자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음식을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즐기는지, 이 트렌드를 읽어야 성공 전략을 도출해낼 수 있고요. 콘셉트와 전략을 도출하고 상품화하기까지는 연구원, 생산, SCM, 영업, 디자인 담당 등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제대로 된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출시 이후엔 판매를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다시 리뉴얼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하니 끈기도 매우 중요하죠.
💡 상무님 이력을 보면 내내 열심히 달리신 것 같단 느낌이 들어요. 보통 직장인들은 3개월, 6개월, 9개월, 3년, 6년, 9년 마다 스트레스가 강해지는 ‘369 증후군’이 있다고들 하죠. 상무님도 겪으셨나요? 겪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돌아보면 369 증후군을 겪을 때쯤 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4년 주기로 근무하는 회사가 바뀌거나, 같은 회사에서라도 담당 제품의 카테고리가 바뀌거나, 아예 근무하는 나라가 바뀌거나… 성격상 정체돼 있거나 성장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못 견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변화하는 환경에 저항하기보다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최근 풀무원의 기세도 아주 좋더라고요. 푸드앤푸드테크대상에서도 5관왕을 거머쥐고, 최근 Vegan Tour to Korea 2023 에서는 기업 대표로 나서 식물성 지구식단 제품을 후원했죠. 컨퍼런스에서 상무님이 강연을 하시기도 했고요. 풀무원의 지구 식단 제품이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풀무원의 노력도 인정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 처음 지구식단을 론칭할 때 회사 내부에서 통합브랜드로 성공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해 주시고 이런 제품을 만들어 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비건분들의 감사편지를 받기도 하고, 특히 이번에 큰 상도 받으니 그간의 노력들을 인정받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처럼 지구식단이 여러 방면으로 알려져서 소비자들이 식품을 선택하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 미국에서의 경험도 있으셔서 비건, 대체식품 등에 대해 꿰고 계신지 오래 됐을 것 같은데요. 원래 비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 원래는 비건에 관심이 없었는데 미국 법인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저도 처음에는 논 비건들과 마찬가지로 비건 음식은 맛이 덜할 것 같다거나 비건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왠지 예민하고 까다로울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마인드에 변화가 생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같은 팀에 근무하던 30대 초반 직원과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그 직원은 늘 까페라떼의 우유를 오트밀크로 바꿔서 마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유가 환경에도 안 좋고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오트밀크로 바꾸면 나도 지구도 좋은 일을 너무 쉽게 실천할 수도 있고 심지어 더 맛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우유의 고소함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에 따라 오트밀크라떼를 마시기 시작했거든요. 그때가 아하 모먼트였던 것 같습니다. 우유와는 다소 다르지만 오트밀크만의 풍미가 있는데다가, 이 한잔을 마심으로 인해 지구환경에 좋은 일을 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서, 그 이후에는 까페라떼를 마실 때 3번 중에 2번은 오트밀크로 바꿔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지구식단도 소비자들에게 이런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식물성 식품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이 이처럼 쉬울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고, 먹던 메뉴 그대로 식물성으로만 바꿔도, 그게 매 끼가 아니라 하루에 한끼, 혹은 일주일에 하루만이라 하더라도, 내가 오늘 하는 이 작은 선택이 지구를 구하는 큰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을 여러분들이 꼭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 실천 방법이 비건이라고들 해요. 그렇다 보니 비건 식품을 만드는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도 있겠더라고요. 어떠신가요?
🗣 비건 제품이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려면 결국 맛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데요. 동물성 원료가 주는 특유의 맛과 향, 입 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식물성 재료만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직 어렵긴 합니다. 내부의 깐깐한 기준으로 레시피에 들어가는 첨가물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어 원가도 높아지고요. 맛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니 마케터와 연구원이 늘 논쟁을 벌이고, 판매 실적에 대한 부담도 느끼는 편이죠. 그래도 블라인드 맛 평가에서 경쟁 제품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영업 현장에서 신제품이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보람되죠. 그걸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습니다.
💡 친환경을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비아냥대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다가 허무함, 무력감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고요. 상무님이나 풀무원 내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는 부서지지 않겠지만, 백 개의 계란을 가지고 계속해서 친다면 적어도 바위가 계란으로 범벅이 되겠죠. 계란을 만나기 이전과는 다른 바위예요. 한 개인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개인들이 여러 명 모여서 같이 실천하면 반드시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 1도만 방향을 틀어도 몇 날 며칠이 모이면 처음 시작점과는 완전히 달라진 장소에 가있을 테니까요.
💡 한편으로는 비건의 중요성을 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중엔 육식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비건을 실천하고자 애쓰지만 죄책감 느끼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 완벽하게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빈도를 줄이는 노력으로도 충분해요. 오늘 고기 먹었으니, 내일 하루는 채식을 실천하면 되죠. 무언가를 강제로 억제하면 반드시 반작용이 생기거든요.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백 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낫다고 해요. 지치지 않고 계속 가는 게 중요합니다. 육식하는 날을 다이어트할 때의 치팅데이 같은 걸로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요. 육식이 안 된다, 나쁜 일이다, 이런 마음보다는 내 몸도 지구도 가볍게 해주자고 마음 먹는 게 좋아요. 지구 뿐만 아니라 내 식생활 패턴도 지속 가능하도록, 적절한 균형이 필요해요.
💡 좀 더 친환경을 위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하고 싶지만 이미 재직 중인 업계를 떠나기 힘든 사람들, 기존의 업무에 '친환경' 키워드를 추가하고픈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 ESG는 이미 기업의 경영환경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직종이건 어떤 일을 하건 본인의 업무와 ‘친환경’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산업에서 대표적으로 친환경을 실천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찾아보면, 거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업무 뿐만 아니라 하루 한끼 채식하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등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 지구식단은 풀무원의 지속가능성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론칭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단순한 카테고리 브랜드라기 보다는, 전사적으로 풀무원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고, 이와 동시에 압도적인 성장을 이루어야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24년도의 지구식단은 올해 대비 2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과제가 있어요. 또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지구식단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바른 먹거리 하면 바로 풀무원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듯이, 지속가능식품 하면 바로 지구식단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브랜드 매니저로서의 목표입니다.
풀무원 지구식단 지구식단 브랜드 매니저 박종희님에게 물었습니다!
🔍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 https://www.fastcompany.com/ : 각 영역별 혁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음.
- 브랜드보이 유튜브 : 광고 기획자 출신 유튜버. 잘 되는 브랜드에 대한 설명과 본인의 인사이트를 설명함
- 인스타그램 Mickey Kim 계정 : 전직 구글 출신. 글로벌 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어, 인간관계, 비즈니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30분.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유튜브. Outlook, Linked in
Feature Editor 박한나
Photo 개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