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업서예가🔍 인중 이정화, 오늘도 씁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서실에서 항상 붓을 쥐고 있던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서예가가 되었다. 서예가 인중 이정화는 젊은 전통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써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고도 낯선 예술, 서예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정진한다.



처음 붓을 잡던 날 기억나세요?

공연히 7살이라고 답하는데요. 7살 때부터 붓을 쥐고 찍은 사진이 있거든요. 사실 그전부터 잡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 모두 늘 서실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로 하원해 장난감을 잡듯 붓을 쥐었어요. 제게 붓은 편안한 느낌으로 기억되거든요.


아버지께서 한문 행·초서의 대가로 불리는 서예가 송민 이주형 선생이시죠?

맞아요. 덕분에 자라는 동안 서예랑 한자를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그게 중국어 공부로 이어져서 고등학교 때는 중국어 통역사가 꿈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과 진로를 결정하는데 문득 ‘내가 진짜 중국어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4용지에 중국어 통역사가 되면 무얼 하고 싶은지 적는데 몇 줄 안되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제가 서예에도 소질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서예가가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더라고요. 작품을 만드는 일도, 해외에 서예를 알리는 일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 뒤 아버지가 교수로 계시는 학교로 진학했어요. 부담감은 없었나요?

입학 당시엔 걱정도 했고 행동도 조심스러웠어요. 그러나 이내 친구들이랑 어울려지내기 바빴죠. (웃음) 서예대회에 출품할 때는 여전히 긴장돼요.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럼에도 되도록 묵묵히 제 길을 가려고 해요.


맞아요. 결국 정공법이 가장 정직하고 빠르죠. 대학교 재학 중에 한국 문화외교사절단 ‘아리랑 유랑단’에 소속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서예를 소개하셨더라고요.

2013년 판소리, 국악기, 서예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16개국 30개 도시를 여행하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렸어요. 저희의 여행경비를 위해 카페베네에서 1억 원의 후원을 받았는데요. 후원금을 받았다는 기쁨도 찰나였어요. ‘1억 원이라는 돈을 인간 이정화가 아닌 서예 하는 이정화에게 준 거다. 그럼 이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서예, 예술에 빗대어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4개월 동안 모든 걸 작품, 글씨와 연관 지어 바라보면서 은연중에 ‘서예가가 꼭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요새는 해외시장에 K컬처가 유행이잖아요. 하지만 10년 전엔 더더욱 한국 전통문화, 서예를 낯설게 바라봤을 듯해요.

서양인이 생각하는 붓은 브러쉬잖아요. 너무 부드러워 세워지지도 않는 붓을 쥐고 하얀 한지 위에 먹 하나만으로 가지고 글을 쓰니까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하얀색과 검은색 사이에 다양한 표현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게 바라봤어요.


이국적인 예술이라 더욱 뜨거운 관심을 얻었군요. 반대로 한국에선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요. 젊은 전통예술인으로 느끼는 어려움도 많죠?

맞아요. 전시장에 작품을 걸면 글자의 담긴 감흥을 느끼기보다 그 속에서 아는 한자를 찾기 바쁘세요. “이건 뫼 산, 물 수”처럼 글자 하나하나를 읽고 넘어가시죠. 작품에 담긴 예술성을 바라 봐주시면 좋을 텐데 아쉬워요. 어쩌면 서예만큼 관람자랑 가까운 예술도 없거든요. 작가가 무얼 표현하고 싶은지 글로 쓰여있으니까요. 글을 읽고 작품을 느끼면 되는데 글을 읽는 데서 그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그걸 깨고 서예를 알리는 일도 저희의 역할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그럼에도 서예가가 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아직도 흰 바탕의 한지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려요. 연필로 글을 쓰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지만 한지 위에 먹으로 쓴 글은 길게는 5천 년 이상도 지구에 남아서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 있어요.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 더 숙고해서 쓰려고 해요. 남겨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초심을 잃을 수 없는 예술이에요.



서예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져요. 개인작업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서예를 알리고 계시잖아요.  드라마 <동이>, <미스터 선샤인>에서 대필도 했고요. 올해 MBC 대선 개표방송에서 ‘붓끝에 피어나는 민심’을 주제로 전국 17개 시·도를 상징하는 낱말을 서예로 표현했어요.

개표방송 작업을 할 때 서울을 상징하는 광화문은 단번에 떠올랐어요. 낱말의 자음, 모음을 지붕의 경사로 표현했죠. 드라마 중엔 <뿌리깊은 나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주인공 소이(신세경)가 말을 못 하는 역할이라 대사를 모두 제가 글씨로 써야 했어요. 당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촬영지인 문경으로 넘어가서 글을 쓰고 새벽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했어요. 글씨 안에 주인공의 감정을 넣으려 부단히 노력했어요. <신입사관 구해령>은 주인공 해령이 여자 사관이었는데요. 늘 연서만을 쓰다가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쓰게 돼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선샤인> 고애신(김태리) 글씨가 인상적이었어요.

‘붓보다는 총을 들겠다’고 말하는 당찬 여자라 강한 필체로 썼던 작품이에요. 유진 초이(이병헌)에게 ‘보고십엇소’ 글을 남길 때는 조금 부드럽게 썼는데 사람들이 글씨에 수줍음이 묻었다며 ‘소녀소녀 하다’고 댓글을 남겼어요. 기분이 좋았죠. 서예의 원초적인 감흥을 전달한 거니까요.



최근에는 일이 더 많아지셨죠.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이후 드라마, 영화도 더 늘었고 기업에서 콜라보레이션 문의도 많아졌어요. 덕분에 정말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개인 작품 활동 말고도 실생활 가까이의 무언가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특히 좋더라고요.



전국적으로 전통예술을 전공, 졸업하는 학생이 대략 4,000명이 넘는다고 해요. 서예가님처럼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젊은 전통예술인을 만나면 좋겠어요.

맞아요. 저는 꽤나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젊은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나 정책이 눈에 들 만큼 많지 않은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거든요. 예전엔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어요. 저보다 더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 제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 같았죠. 선배,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푸념처럼 하곤 했는데 종종 친구들의 서실에 제가 쓴 글 이미지나 영상을 들고 와서 “이런 글씨를 배우고 싶다”라고 한데요. “네가 하는 모든 활동이 우리에게도 오고 있으니 걱정말라”라고 하더라고요. 서예가 대중화될수록 젊은 전통예술인, 서예가를 위한 정책, 지원도 늘어날 거라 믿어요.


누구나 서예인, 서예가가 될 수 있나요?

그럼요. 서예의 매력 중 하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글이 깊어진다는 거예요. 삶의 지혜가 많은 어르신이 붓을 잡고 글을 쓸 때면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작품에 감돌죠. 저희 교수님께서 종종 농담으로 “숟가락보다 붓이 더 가벼우니 밥 먹을 기력만 있다면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은 예술이죠. 또 딱히 대회를 나가 수상해야만 서예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매일매일 글을 쓰다 보면 마음속에 그 글이 들어올 거예요. 그럼 아마 자연스레 서예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SNS에 작품을 기록하는 것조차 의미 있어요. 저 또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챌린지처럼 1일 1서를 기록하고 있어요. 근래는 개인전 준비로 조금 뜸했지만요. 인사동 갤러리라메르에서 1월 4일부터 10일까지 <水 _痕 그리고 결>을 연답니다. 전시 기간 내내 갤러리에 있을 예정이니 편히 걸음해 주시면 좋겠어요.





, 서예가 이정화 님에게 물었습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딱히 없어요. 대신 딴짓을 해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려고 하죠.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쉬는 시간에 습관적으로 접속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으려 노력해요.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톡. 아무래도 핸드폰 밖에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상적인 앱들을 주로 사용하는 듯해요.



Freelance Editor 유승현

Photo 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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