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업친환경 패션 브랜드 대표🔍 ‘오픈플랜’의 이옥선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물 7000L, 한 사람이 1년에 버리는 헌 옷의 무게 30kg. 이옥선 대표의 목표는 옷을 만들지 않고, 사지 않는 것이다.


폐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중국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를 보고 오픈플랜 창업을 결심했다고요.

이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동식물 모두 자연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지구상에서 인간만 쓰레기를 만들죠. 성장, 개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행동이 포장돼요. 오픈플랜을 열기 전 데무의 박춘무, 오브제의 Y&K, 한섬의 타임 디자이너로 일했고 아웃스탠딩오디너리라는 패션 브랜드를 운영했습니다. 옷을 만드는 내내 환경문제와 내적으로 충돌해왔어요. 다큐멘터리를 본 즈음, 더 이상 이 문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패션 산업에서 친환경 패션 브랜드를 기획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친환경 패션 브랜드는 그 자체로 모순된 존재예요. 산업디자인과 건축이 삶을 윤택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면 패션은 그에 비해 사치로 여겨지죠.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생각이 많았어요. 디자이너로서 나의 할 일, 오픈플랜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에 앞서 ‘패션은 무엇인가?’를 먼저 되짚어 물었죠. 저는 멋진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패션계는 대량생산과 빠른 폐기를 반복하는 구조예요. 단순히 비건이고 플라스틱 프리 소재만을 사용했다 해서 환경적인 패션은 아니에요. 섬유는 아주 작은 단위의 문제죠. 환경, 인권, 동물권까지 고민할 게 많아요. 소재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민감하게 고민하지만 적은 양을 생산하고 속도를 낮춰보고자 노력해요.

 


대표적인 비건 소재로 꼽히는 면 역시 친환경 소재라 말하기 어렵잖아요. 목화밭에는 엄청난 물이 필요하고, 농약과 살충제도 사용하니까요. 오픈플랜이 소재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2017년 처음 오픈플랜을 시작할 때부터 비건 & 플라스틱 프리 소재를 사용한 건 아니었어요. 시즌 컬렉션 후 산더미처럼 남은 재고 원단을 재활용하고, 인조 모피와 인조가죽을 사용했죠. 최근에는 비건 패션이 비교적 쉬워졌어요. 동물성 소재를 대체할 플라스틱 소재가 시장에 많아졌거든요. 하지만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지구에 부담이 적은 옷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구상에 과연 친환경적인 패션 소재가 있는가?”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워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오가닉 코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멀쩡한 숲의 나무를 베어야 하죠. 또 제초제를 안 쓰려면 사람 손으로 직접 잡초를 솎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할 거고요. 탄소 배출이 낮은 소재를 기준으로 삼기에는 연구 기관이나 지역에 따라 결과치가 상이하고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 배출량도 무시할 수 없어요. 오픈플랜에서는 이 모든 걸 고려해 소재마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의 정도를 4단계로 분류해요. 그리고 제품마다 자세한 소재와 비건 & 플라스틱 프리 정도를 표시하고 있죠.

 

오픈플랜 홈페이지에는 패션 브랜드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 생소한 소재가 많더라고요.

리넨, 햄프, 마처럼 비료나 물이 적은 환경에서도 채취할 수 있는 섬유를 선호해요. 오가닉 코튼의 사용을 우선시하고요. ‘텐셀 큐프라’ 같은 재생섬유도 적극적으로 사용해요. 되도록 원단 염색을 지양하고 꼭 사용해야 한다면 식물 염색이 된 소재를 고르려 하죠. 동물성 섬유인 실크가 사용되는 실크 스크린보다는 디지털 스크린을 선택하고요. 플라스틱 지퍼와 단추 대신 너트 단추를 쓰고 폴리에스테르 안감을 면화씨에 붙은 솜털로 만든 ‘벰버그’로 교체하면서 플라스틱 프리에 가까워졌어요.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심지에 사용하는 스트레치 안감, 케어 라벨 등에 여전히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하니까요. 다음 시즌에는 버섯 가죽으로 시제품을 만들어볼까 계획 중이에요.


모든 디자인이 그렇듯 친환경 소재를 골랐더라도 결국은 결과물이 아름다워야 하죠. 너트 단추보다는 일반 지퍼가 자신의 미감에 더 가까운 사람도 있을 테고요. 오픈플랜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나요?

매우 공감해요. 모든 디자인은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서 고민하는 것 또한 디자인을 잘하는 일이에요.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저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고요. 잘된 디자인을 보면 보편적인 것에 작은 새로움이 더해진 것 같아요. 오픈플랜 역시 신선하고 실험적인 디테일에 완성도를 더하는 방향을 추구하죠.

 


국내에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드는데요.

저희는 생산한 옷의 90% 이상을 해외에 판매해요. 브랜드를 기획할 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했어요. 현재 국내에서는 많은 패션 브랜드가 편집 플랫폼에 위탁 판매를 해요. 경쟁이 과열된 만큼 높은 할인율을 걸어 빨리, 많이 팔아야 이기는 구조죠. 혹여 그 시즌에 판매율이 저조하기라도 하면 모든 재고는 브랜드의 몫이 돼요. 소규모 신진 브랜드에 창구가 많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저희가 구축하고자 하는 철학에 반대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홀세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현재 중국, 홍콩,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의 작은 부티크 바이어들과 거래하고 있죠. 그럼에도 국내에 저희의 행보를 지켜보는 팬들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예전에 SNS 팔로어들과 함께 #오픈룩북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오픈플랜 옷을 입고 팔을 벌린 자세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릴레이 캠페인이었는데 친구 세 분이 해운대까지 가서 촬영을 하셨어요. 이후에 이분들과 환경문제와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이브 채팅을 열었는데, 한 호텔에 룸 3개를 잡아 참여해주셨을 만큼 열정적이었어요. 이런 응원이야말로 브랜드를 이어가는 데 동력이 돼요. 환경과 패션 사이의 문제를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중국에서도 환경적인 옷에 관심을 두다니 의외군요. 중국은 패스트 패션 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을 뒀어요. 저와 일하는 바이어도 늘 거리에서 가장 유행하는 아이템과 옷이 뭔지 궁금해했고요. 하지만 중국 정부가 폐플라스틱, 비닐 수입 금지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요. 어쩌면 중국에 대한 선입견일 수도 있겠네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니까요.

 

비건 &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가 당신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시부모님께서 2019년부터 비건 김치를 담가 보내주세요. 비건 김장이라고 거창한 건 아니고 젓갈을 빼고 담그는 방식이에요. 어른들에게는 사찰 김치로 이미 친숙한 방식의 음식이거든요. 먹고 입는 데 비건의 삶이 불편한 점은 크게 없어요. 명함의 경우 쓰임을 다한 종이 상자에 도장을 찍고 잘라 손수 만들고요. 다만 신발처럼 특별한 기능을 지닌 것들의 대체재를 아직 찾지 못해 새로 사는 것을 지양하고 기존에 가진 물건들을 오래 사용하고자 해요.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신발은 많아도 플라스틱 프리 소재 제품은 드물거든요. 룩북을 촬영할 때 필요한 액세서리나 슈즈도 저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활용하거나 천연고무로 만들어진 부츠, 클로그를 구입해요.

 

오픈플랜의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패션에는 비거니즘 말고도 인권, 지역 사회, 동물권 등 더욱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요. 저희는 파트너사에 공정한 공임을 주는 일도 중요하게 여겨요. 방학 기간을 맞아 오는 인턴 친구들이 종종 “옷을 사람이 직접 만드는지 몰랐다”라고 말해요. 전공자들조차 옷을 기계나 로봇이 생산할 거라 생각하는 거죠. 저 역시 브랜드에 근무할 당시에는 샘플실에서 제작을 발주하기 때문에 몰랐던 부분이에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서울에 얼마나 많은 공장이 있는지, 이 업계에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어요. 아무리 친환경적인 소재를 고른다고 한들 하청, 하하청으로 넘어가다 보면 끝단에서는 환경, 인권, 동물권을 챙기기 어렵거든요. 소재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말하기 어려워요.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델이 패션쇼장에서 런웨이를 한들 그 옷을 만드는 공장 소녀들의 인권을 챙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SNS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패션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이야기가 세상에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매 시즌 새로운 옷을 선보여야 하니 작은 선택에도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역시 매 시즌 새로운 걸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관행을 답습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이자 패션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리포메이션’은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 ‘Being Naked’를 꼽아요. 하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가 갑자기 산으로 들어가 누드 상태로 살 수 없으니 두 번째 방법으로 “리포메이션을 입으라”고 말하죠. 옷을 만드는 일을 멈출 수는 없어요. 의식주는 생활의 필수 요소니까요. 다만 저희도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거예요. 과하게 취하는 것을 포기하고, 선택지를 열어두자고 말이에요. 저희에게는 SNS상에서 상품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상품 홍보나 소비 장려는 자제해요. 옳다고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만 대화하고자 하죠.

 

옷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면,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목표는 뭔가요?

우습게도 저의 꿈은 옷을 만들지 않는 패션 디자이너예요. 패션이라는 강력한 매개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죠. 친환경적인 옷은 뒤따라오는 리워드 같은 거예요. MZ세대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비건 패션이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TPO에 맞게 환경적인 옷을 고르기는 어렵거든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싶어요.


Freelancer editor 유승현

Photo 송시영(점점점점점점/ 위켄드랩/ 천년식향)

Photo 최남용(오픈플랜 이옥선)/ 각 브랜드(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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