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업19년차 잡지 에디터이자 작가, 번역가, 브랜드 컨설턴트🔍 최혜진의 효율적으로 일하기

브랜드 미디어 컨설턴트이자 7권의 책을 쓴 작가, 강연자이자 번역가. 간단히 규정하기 어려운 작가 최혜진은 오늘도 ‘나’라는 팀원을 살뜰히 다독여 최대한의 능률로 최선의 결과물을 완성한다. 발레리나의 점프처럼 사뿐히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일하는 방법을 그에게 물었다.



브랜드 미디어 컨설턴시 회사 대표, 작가, 번역가, 에디터 등 여러가지 직함을 갖고 계시죠. 무엇으로 소개되는 것이 가장 편한가요? 

작가와 에디터. 만약 이 둘 중 다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에디터를 가장 먼저 놓을 것 같아요. 에디터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하거든요. 본질적으로는 저를 에디터십을 가진 사람이라 말하고 싶어요.


2014년 첫 책을 쓴 이후, 지금까지 7권의 예술 관련 책을 썼죠.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동안도요. 꾸준히 글을 쓴 계기가 궁금해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저는 음반 가게, 만화방, 비디오 대여점처럼 문화 콘텐츠들이 벽을 모두 메운 공간에 살았어요. 그냥 노는 걸 너무 좋아했죠. 중앙 M&B 인턴 에디터로 입사해서 처음 받은 꼭지가 깍두기만큼 작은 크기의 신보 소개 기사였어요. 늘 놀이처럼 하던 일을 돈을 받으며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늘 영화, 미술, 음악 같은 것들이 제 옆에 있었어요. 월간지 마감이 참 혹독하거든요. 번아웃처럼 무얼 봐도 시큰둥하고 마음에 여력이 없어요. 그럴 때면 저는 미술관으로 도망쳤어요. 그게 10년 동안의 제 취미였어요. 작품을 본다는 건 그림과 제 사이에 어떤 감흥, 반응을 일으키는 행위거든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은 사회생활을 이제 막 배우면서 일과 살 모두에 자신만의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는 시기잖아요. 자신만의 패턴을 만드느라 고민이 진짜 많죠. 저 역시 미술작품을 볼 때 그러한 고민이 스몄어요. 블로그에 일기처럼 작품과 제 사이에 일어난 내적 교감에 대해 일기처럼 쓴 글이 책 <명화가 내게 묻다>로 출간되었어요.


책 <명화가 내게 묻다>는 여느 미술책과는 구성이 달라요. 친절하고 상냥하죠. 

비전공자로서 저 역시 미술 앞에 서면 약간 주눅 들게 되고 마음이 편치 않아 서성거리게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중들의 눈높이로 다가가고 싶었어요. ‘작품이 친숙하게 느껴지려면 어떠한 형식이 좋을까?’를 고민했죠. 화가마다 질문을 하나씩 달았어요. 이를테면 ‘질투심은 왜 생기는 걸까요?’ 라는 질문에 질투의 감정이 담긴 작품을 설명하는 식이죠. 저의 감정, 경험을 쓰더라도 그래야 보편성이 생겨나니까요. 아무래도 에디터 출신이라 블로그에 글을 적는 데에도 기획을 가미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의뢰가 왔어요.



에디터와 작가라는 직업은 참 다르잖아요. 

맞아요. 에디터는 자신의 지면을 책임지고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등 여러 스태프를 총감독하는 자리에 있죠. 취재원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잘 요리해서 먹기 좋게 상을 차려야 하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주체적이죠. 그런데도 동시에 그 재료부터 내가 만들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또 매체 타이틀을 떼고 제 글을 읽어도 괜찮은가? 에 대한 고민도요. 매체 후광효과라는 게 실력에 대해 착시가 일어나기 쉬워요. 이런 갈증이 계속된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작가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고요.


작가 이외에 다른 직업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를 대신해 책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명함 역할을 하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 품에 안겨서 읽히면서 호감을 만들어내고 끝내 저라는 사람을 찾아내게 해요. 강연, 번역, 전시 기획 등 여러 일들이 책 덕분에 시작됐어요. 브랜드 미디어 컨설팅 회사 아장스망은 에디터 본업의 연장선이에요. 브랜드 매거진을 만들거나 CI를 개편할 때처럼 기업의 여러 일을 돕죠.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업무가 몰리면 상사가 업무량이나 데드라인을 조율해주잖아요. 하지만 회사 밖은 그렇지 않죠. 이렇게 많은 일을 하려면 시간관리가 중요할 듯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2016년인가? 제가 정규직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인데 작가, 강연자로서 비정기적인 일들이 자주 생겼어요. 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아주 강력한 회의감이 찾아왔어요. 미술관, 그림책 이 모두가 제게는 본업에서 도피하는 놀이터였는데 그게 일의 영역으로 들어온 거예요. ‘나는 하루 종일 일만 하는구나. 어디서 재충전을 해야 하지’ 묻게 되더라고요. 어디까지 내가 프로페셔널하게 해낼 것인지 결단이 필요했어요. 그와 동시에 알게 되었죠. 저는 미술책도 그림책도 애호가의 취미활동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요. 직업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모두 나의 프로페셔널한 영역으로 만들자 결정했어요. 전문가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공부도 하고 체계도 갖춰야겠다고 결심했죠.



체계가 효율을 만들죠. 더 많은 일을 밀도있게 해낼 수 있도록 말이예요. 

구글 캘린더를 12년 정도 사용했어요. 캘린더에 에디터, 브랜딩 디렉터로서의 업무뿐만 아니라 작가, 강연자, 번역가의 일도 모두 정리해요. 프로젝트 일정과 테스크는 다른 단위예요. 어떤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테스크를 최대한 상세하게 쪼개서 구글 캘린더에 기입하는 식이에요. 또 어떤 날은 제가 일을 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요. 아플 수도 있고요. 그러한 변수까지 고려해서 스케줄링하는게 중요해요. 그래야 지킬 수 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는 구글 캘린더에 적힌 대로 움직여요.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배당을 한 일들이죠.


나라는 스태프와 일하고 있는 거네요. 

맞아요. 하하. 그리고 다양한 일을 병행하려면 여러 자아를 빠르게 전환해야 해요. 그럴 때 도움되는 게 데이터베이스예요. 그림책에 대한 외고 하나를 작성해야 하는 업무가 생기면 저는 제가 그간 읽은 그림책 목록 엑셀 파일을 열어요. 그런 게 있으면 순식간에 일이 시작돼요. 파일을 훑어보면서 주제만 잡아도 큰 허들을 넘으며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거든요. 제게는 수 백개의 책을 읽으면 수집한 문장 노션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업무에 큰 도움이 돼요.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효율이 아카이빙에서 오는군요.

아카이브를 비롯해 시각화하는 일을 중요시해요. 책을 쓸 때도 목차를 엑셀로 만드는데요. 꼭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언급하려는 레퍼런스, 발췌문 등을 엑셀로 도식화해요. 그렇게 정리만해도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나아갈 방향은 정했다는 뜻이니까.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때 혼란스럽고 에너지 소모가 커요. 어디로 갈지 정한 뒤 그 길을 가는 건 생각보다 수월해요. 물론 엉덩이 노동은 필요하지만요. 하하.


작가님의 사회초년생 시절이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일에 흠뻑 빠져 있었고 잘하고 싶은 욕망이 참 컸어요. 근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 열등감에 시달렸어요. 내면이 평안하지 못했어요. 월간지 에디터는 성적표가 매달 나오는 직업이라 일, 성취에 몰두해서 완벽주의가 심했죠. 너무 긴장을 한 터라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할 줄도 몰랐죠.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 시절과 지금,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도 달라졌을 듯해요.

그때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동경했어요. 자신의 색이 정확하게 묻어나는 사람. 지금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생각해요. 첫째는 자기자신과의 약속이죠. 오늘 이걸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못 지키는 사람은 당연히 일을 잘할 수 없어요. 그 다음엔 타인과의 약속이죠. ‘저 사람이 말하는 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니까 믿어도 괜찮아’ 라는 신뢰를 주어야 하죠. 자잘한 약속을 꾸준히 지켰을 때 신뢰가 쌓여요. ‘오늘까지 메일 드릴게요’ 처럼 다른 사람에게 데일리 업무에서 허투로 공약을 난발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킬 수 있는 말만 해야 하죠. 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려주면서 일하는 사람을 꼽고 싶어요. 레퍼런스뿐 아니라 친절한 설명, 뚜렷한 비전 등을 통해서요. 종종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싶잖아요. 하지만 타인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해요. 한번 더 친절하게 하려고 애쓰는게 참 중요하더라고요.

 


알알이 모두 맞는 말이라 인터뷰가 아니라 좋은 선배를 만난 기분이에요. 최근에 소사이어티 오브 에디터스라는 모임도 꾸리셨죠. 

지금은 제가 초년생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과 미디어 환경이 너무 달라졌어요. 그 때는 도제식으로 많은 일을 배웠어요. 말로는 정확히 정리하기 어렵지만 선배들이 쌓은 경험이 교판처럼 내려왔죠.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노하우, 이해와 태도 같은 것들을 배웠어요. 저는 그 수혜를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잡지사 이외에도 스타트업, 외주 콘텐츠 제작사 등 다양한 곳에 에디터가 있죠. 의외로 일반 기업에서 혼자 에디터라는 직무를 감당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에디터십을 키우긴커녕 대화할 상대도 없이 각자도생으로 일하고 있어요. 근데 또 SNS시대라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지 전시해야 하죠. 동료는 없고 다들 경쟁자만 있는 시장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또한 각자 파편화되면서 자신의 노동이 헐값에 거래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고요. 요즘 젊은 에디터 친구들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이 동네에도 온정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자 만든 모임이에요. 올 상반기에는 선배와의 대화처럼 오프라인 만남을 기획하면서 1기 멤버들이 얼굴을 트고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 모임을 통해 무엇을 우리가 할 수 있을지 고민, 기획하고 있어요. 하반기에는 2기 멤버를 모집할 계획이고요.


소사이어티 오브 에디터스뿐 아니라 작가님의 다음 스텝이 자연스레 기대돼요.

지난 커리어 패스를 살펴보면 저는 늘 직관이 시키는 일을 했어요. 매일매일은 계획형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거시적으로는 직관을 따랐죠. 소사이어티 오브 에디터스도 그렇고요. 1~15년차까지는 오로지 ‘나’를 잘 다지는 것만 관심이 있었어요. 당연한 일이에요. 업계에서 작게나마 차지할 영역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요만큼은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내면에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나고 저의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에게 나눠줘야 하는 때가 온듯 해요. ‘내가 뭘 얻을 수 있지?’가 아니라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라면서 나눠줄 수 있는 게 궁극의 힘이자 멋짐인 것 같아요.  





, 소사이어티 오브 에디터스의 최혜진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즐겨 찾는 사이트 또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없다. 대신 7년간 독서를 하며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을 아카이빙한 노션을 살핀다. 이제는 키워드를 검색할 수 있을 만큼 그 양이 방대해졌다. 그 다음엔 애플 기본 앱인 도서에 여러 논문 PDF를 담아 읽는다.


🔍 하루 평균 인스타그램 또는 타 SNS 사용 시간은?

1시간 내외.


🔍 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3개는?

첫째는 유튜브 뮤직. 글을 쓸 때는 가사가 없는 OST 앨범을 주로 듣는다. 특히 <인터스텔라>처럼 우주 관련 영화 음악을 듣는데 뭔가 무중력 상태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를 하나씩 낚는 기분이다. 그 다음은 가계부와 다양한 OTT 앱. 작가로서의 삶만큼이나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로서의 자아도 정확한 편이다.



Freelance Editor 유승현

Photo SO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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